과도교정(hypercorrection)과 언어학에서의 설명 - "between you and I"
'프롬킨'이라고만 해도 알 사람은 다 아는 책, 故 Victoria Fromkin 교수의 유명한 언어학 (및 영어학) 개론서 <An Introduction to Language>의 사회언어학 파트("Language in Society")에는 어떤 '미국 영어 방언'이 등장한다.
이 방언에서는 'between you and me' 대신 'between you and I'가 사용되고, 'Won't he let you and me swim?' 대신 'Won't he let you and I swim?'이 사용된다. (다만 이 방언에서도 *Won't he let I swim?과 같은 문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즉 conjoined NP에서만 목적어의 'X and I'가 등장한다.)
(언어학하고는 별개로, 학교에서 영어 시험을 보는 학생이라면 이렇게 목적어에 'you and I'를 썼다가는 오답처리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An Introduction to Language>의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표현은 점차 아나운서나 정치인이나 대학교수들도 사용하는 표준 영어가 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미국 영어 방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between you and I'는 셰익스피어도 사용했던 표현이고, 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이런 구문을 사용했을 정도이다. (밑에 링크 첨부한 영어 위키백과 문서 참조)
이러한 현상은 왜 등장했을까?
내가 보기에 목적어 자리의 'X and I'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과도교정(hypercorrection)이라는 설명보다 '더 나은' 설명은 없는 듯하다. (<An Introduction to Language>에서도 'between you and I'를 과도교정의 예로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아래와 같은 일이 차례차례 벌어졌을 것이다.
1. 강조의(emphatic) 'me' 때문이든 무슨 이유로든, 영어 사용자들이 주어 자리에 'X and me'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Susan and me are going to Egypt" 등)
2. 그러한 용법에 대해, '주어인데 me라니 너는 영어를 잘못 쓰고 있다. I라고 해라.'와 같이 주어 자리에 'X and me'를 쓰지 말고 'X and I'를 쓰라고 규범주의적으로 지적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고,
(즉 "Susan and me are going to Egypt"라고 말하면 틀리고 "Susan and I are going to Egypt"라고 말해야 맞다는 내용의 지적)
3. 이에 따라 "주어 자리에 'X and me'를 쓰는 것은 잘못되었고 'X and I'라고 해야만 옳다"라는 인식이 퍼졌는데,
4. 많은 언중이 그러한 인식을 너무 신경쓰는 바람에 ('틀리게 말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주어 자리이든 목적어 자리이든 일단 'X and me' 자체에 대해 그냥 무조건 잘못된 말일 거라는 감각을 가져 버렸고, 대신 'X and I'를 더 써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에 읽었던 박진호(2010) 선생님의 논문 <언어학에서의 범주와 유형>에 등장하는 유비를 가져다 쓰자면,
사람이 사자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보면 실제로 사자이든 아니든 일단 사자일 거라고 판단하고 도망가는 편이 생존 및 번식 확률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자. 아마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씩 그런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5. 뭐가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일일이 파악하기에 너무 바쁜 언중의 입장에서, 자세한 사정을 잘은 모르겠지만 'X and me'는 혹시 틀려서 지적을 유발할 수도 있는 녀석이니 일단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목적어 자리에도 'X and I'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Susan and me are going to Egypt"를 피해 "Susan and I are going to Egypt"를 사용하다 보니, 애꿎은 "Emily loves Susan and me"에서의 Susan and me도 회피 대상으로 여겨져 "Emily loves Susan and I"를 대신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이 'between you and I'류 표현을 보고 품는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에 있어서 이상과 같이 '과도교정' 개념을 참조하는 설명이 직관적으로 가장 유관하고 핵심적인 것으로 보인다.
내가 당장 시대에 따른 추세를 말할 수는 없지만 이상의 설명은 일종의 통시적인 설명이고,
'틀릴까 봐 무서워서'가 의사소통을 위한 기능은 아니지만, 틀리는 것을 피하는 선택은 심적 안정(?)에 쓸모가 있으므로 어느 정도 기능주의적인 설명인 걸로 보인다.
그런데 만약 생성문법적으로, 공시적이고 형식적인 측면만 가지고 이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성문법은 이론상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테니 'between you and I'류 구문에 대해서도 이미 생성문법 관점의 설명이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설명에서는,
'between you and I'나 'Jenny saw John and I'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방언 또는 개인어(idiolect)에서,
전치사 between이나 동사 see가 그 보충어 'you and I'나 'John and I'에 할당하는 대격(accusative case)이나 전치격(prepositional case)이 유독 'I'에는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
아직 그런 이유를 논하는 설명을 읽어 보지 못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해명하든지 간에 순전히 공시적이고 순전히 형식적인 그러한 방식의 논의는 내게 그다지 핵심적인 것으로 다가오지 않을 성싶다.
'틀리게 말하는 게 두려워서'라는 동기가 분명한데 거기에 대해 특정한 방언이나 개인어를 상정하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격 할당이나 자질 점검(feature checking)을 상상하며 말하는 것에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틀리게 말하는 게 두려워서'라는 비언어적 동기가 흐릿해질 만큼 'between you and I'류 구문이 충분히 관습화되고 나면 그때는 공시적, 형식적 설명이 더 주효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관습이 되어 동기를 잊어버리고 나면 자의적인 것이 되므로)
그러나 몇백 년 전 셰익스피어도 'between you and I'와 'between you and me'를 혼용한 걸 보면, 'between you and I'가 과도교정이라는 비언어적 동기와의 연결을 완전히 끊어내고 순전히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문법의 영역에 속한 주류 구문이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현대 영어 화자의 상당수가 'between you and me'류 구문과 함께 'between you and I'류 구문을 산발적으로 혼용할 것임(아마)을 생각하면, 단일하고 균질적인 개인어를 상정해 두고 형식적, 공식적 설명을 시도하는 접근법은 더욱 허무하게 느껴진다.
+ 틀리게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주격과 대격의 형태가 같은(syncretism) 'you'의 존재가 유추(analogy)에 한몫했을 수 있다. 이것도 아무튼 공시적이거나 형식적인 설명은 아니다.
과도교정과 유추는 "they've awarded he and his brother certificates of merit"이나 "return the key to you or she"처럼 'I'가 아닌 다른 대명사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문 영어 위키백과 참조)
++ 비정형절(의 주어) 앞에 등장하는 'for'에 대해서도, 이쪽은 통시적 동기가 훨씬 흐릿해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비슷한 감상을 가지고 있다.
Carnie의 통사론 개론 교재에 등장하는
[For him to eat asparagus] is a travesty.
와 같은 문장에서,
for가 비정형절을 보충어로 취하는 보문소(complementizer)라면, 'him'의 격이 주격이 아니라 대격인 이유를 설명하기가 까다로워 보이는데,
아마 여기에 대해서도 이미 생성문법적 설명이 존재하겠지만,
"저런 비정형절을 이끄는 보문소 for는 전치사 for로부터 유래한 것(실제로 그러한지 여부는 사실확인이 필요하다)이고
후행하는 주어의 대격은 전치사의 흔적이 화석처럼 남은 것이다"
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편이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참고 - Wiktionary에 실린 'I'의 usage notes 중 일부
When used in lists, it is often thought better to refer to oneself last. Thus it is more natural to say John and I than I and John. In such lists, the traditional rule is to use the same case form one would choose if there were only one pronoun. Thus, since we say I am happy, we say John and I are happy, but since we say Jenny saw me, so we say Jenny saw John and me. However, one frequently hears John and me are happy, which is traditionally seen as a case error. Similarly, probably as a hypercorrected reaction to this, one can occasionally hear phrases like Jenny saw John and I.
참고2 - 영어 wikipedia의 'between you and I' 문서
https://en.wikipedia.org/wiki/Between_you_and_I
참고3 - 나무위키 '과도교정' 문서
https://namu.wiki/w/%EA%B3%BC%EB%8F%84%EA%B5%90%EC%A0%95
(전체 내용을 보지는 못했고, 일단 '-ㄹ려고'와 '됴심' 이야기는 재미있다.
여담으로 나무위키에서 다루고 있는 '-ㄹ려고'의 과도교정은,
행정상~법적으로, 그리고 나의 인식에서는 이미 아내이고 사회적으로는 한 달 뒤에 아내가 될 사람의 발화에서 자주 감지하고는 한다.)
+++ 모든 경우에 통시적~기능주의적 설명이 가능하거나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내가 아는 게 너무 없고, 그냥 단지 'between you and I'에 관해서만큼은 공시적이거나 형식주의적인 설명보다 과도교정이라는 설명이 더 핵심적이고 간결해 보인다는 감상을 적은 것뿐이다.
대부분의 언어현상이 순전히 문법적이고 형식적으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런 현상에서만큼은 비언어적 동기만이 주된 동기가 된다, 라는 정도도 괜찮겠다.
+4 공시적, 형식적으로는 between you and I 를 하나의 어휘항목으로 등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스페인어 conmigo나 contigo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있으려나?
다만 어휘로 등재한다는 속편한 접근으로는 아래와 같은 90가지 이상의 현상들을 설명하기 까다로울 것이다. (결국 구문문법...)
+5 COCA 기준, 'between you and me'는 'between you and I'보다 약 열 배 더 자주 쓰인다.
'between * and me'와 'between * and I'도 마찬가지였다.
’between * and I'로 검색하면 'between us and I'도 나오는데, 의미를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I는 between의 보충어에 속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절의 주어로 쓰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