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외국어 공부는 한 자도 하지 않겠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이미 있는데 외국어 공부 같은 걸 해서 얻다 쓰겠는가. 한국어만 할 줄 알면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과도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와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외국어 공부 따윌랑 영영 그만두고 실제로 삶에 도움이 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겠다.
이제껏 허상을 좇느라 낭비한 인생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철이 들어서 다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가 남긴 명언을 살펴 보자.
“자신의 언어를 아는 사람은, 외국어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인가!
이미 한국어를 알고 따라서 외국어에 대해 모든 걸 아는 내게 외국어 공부는 시간낭비임에 틀림없다.
이 가르침을 깊이 새기기 위해, 괴테의 명언을 독일어 원어로도 한번 살펴 보자.
"Wer seine eigene Sprache kennt, weiß alles von fremden Sprachen."
괴테가 정말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그 뜻이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느낌이 든다.
물론 나는 한국어를 통해 그 의미를 이미 정확히 알고 있으니 뜻이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다느니 하는 것은 순전히 착각에 불과하다.
이번엔 영어로도 한번 살펴 보자.
"Those who know their own language know everything of foreign languages."
영어는 독일어와 친척 관계에 있는 언어인 만큼 어휘 요소와 문법 요소가 거의 일대일로 대응이 된다.
Those who : wer (복합관계대명사)
their own language : seine eigene Sprache (관계대명사절의 목적어. Sprache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에 명사구 안의 요소들이 여성 단수형으로 바뀌어 있다.)
know : kennt (관계대명사절의 동사 - 독일어에서는 관계사절 동사가 맨 끝에 나온다)
이렇게까지가 주절의 주어.
know : weiß (주절의 동사. 주어 'wer seine eigene Sprache kennt'가 3인칭 단수이기 때문에 3인칭 단수 현재 직설법 형태를 취한다.)
everything : alles (주절의 목적어-의 핵어 명사)
of : von (3격 명사구를 요구하는 전치사 - 아마 무엇무엇에 대해 알다에 이 전치사를 쓰는 게 요즘 흔한 용법은 아닌 것 같고, 괴테가 옛날 사람이라 약간 옛날 말투를 쓴 것 같다.)
foreign languages : fremden Sprachen (3격 복수형. von 때문에 3격을 취한다. 괴테 시절엔 어땠는지 몰라도 요샌 Fremdsprache 이렇게 합성어로 표현하는 게 훨씬 일반적인 듯.)
이렇게 원어로 세세히 살펴보고 나니 괴테의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외국어 공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구나!
유우머 있는 마무리가 뭔지 모르겠음. 급 마무리
사실 괴테의 명언 원본은 “Wer fremde Sprachen nicht kennt, weiß nichts von seiner eigenen.”이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언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동의하는 말이고, 문외한인 내가 말하기에는 뭐하지만 국어를 연구하거나 가르치거나 공부할 때 정말 제대로 하려면 외국어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았을 때의 폐해로 가장 단순한 것 하나만 꼽자면 ‘전 세계에서 우리말만 이러이러하다’라는 형태의 온갖 가짜뉴스를 스스로 걸러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있겠다.
명언 원본을 이 글에 맞게 뒤트는 데에는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했다. 어순만 좀 바꾸면 되려나 생각했더니 전혀 그 수준이 아니었다.
독일어는 영어와 달리 형용사가 성, 수, 격에 따라 굴절(곡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원본의 여성 단수 3격 seiner eigenen을 여성 단수 4격 seine eigene로,
원본의 복수 4격 fremde Sprache를 복수 3격 fremden Sprachen으로 바꿔 주어야 했으며,
원문에서 ‘seiner eigenen’ 뒤에 생략된 명사를 되살리는 세심함(?)이 필요했다. (이런 생략은 영어에도 있지만)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때로부터 벌써 15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발견하시는 독자께서는 부디 지적해 주시길...
원래 이번 만우절엔 스키추닐 오뒤에스프(Scitsiugnil Oduesp)를 복귀시켜서 좀더 퀄리티 있는 유사언어학 글을 써 보려고 했는데 요 몇 주~며칠 갖가지 이유로 싱숭생숭해서 그럴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낼 수가 없었다. 이건 다음 기회에.
https://m.blog.naver.com/ks1127zzang/223005465016
유사언어학 파헤쳐 보기 - '웅녀는 베트남 사람?!'
글을 하나 읽어 보자. 오늘 아침에, 언어학적 방법론을 통해 단군신화의 웅녀가 본래는 베트남 민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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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재밌는 건지 모르겠단 피드백 때문에 덧붙이는 설명:
외국어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독일어 문장을 성실히 분석하는 것이 유우머 포인트.
그리고 외국어 공부 할 필요 없다는 외국인의 말을 외국어 공부 덕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이러니...인데 별로 잘 풀어내진 못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