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58

정보, 언어학, 소통 효율, 음운 이웃 - 흥미로운 사실들

1. 사람은 발화 전체의 단위시간당 정보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 '균일 정보 밀도' uniform information density라고 한다. 정보량이 많은 음절은 길게 발음하고 정보량이 적은 음절은 짧게 발음한다. 1.1. 구글 n-gram 데이터를 가지고 11개 유럽 언어의 단어들을 분석해 보니, 11개 언어 모두에서 정보량이 많은 단어일수록 (정서법 기준) 글자수가 많고, 정보량이 적은 단어일수록 글자수가 적다고 한다. 2. 심지어 똑같은 단어에 대해서도 그렇다. 같은 'nine'이어도, "I would like nine please"라는 말의 'nine'이 "a stitch in time saves nine"이라는 속담의 'nine'보다 훨씬 길고 careful하게 발..

언어학 2025.03.23

‘그것’이 의존명사구를 가리키는 장면들 - 의존명사구의 실체성?

https://youtu.be/__WXEmLoig8?feature=shared&t=2133:33부터 보시길  ​ "모든 수화언어의 공통조상은 없다." vs. "수어 문자로 쓰인 언어학 개론서를 본 적은 없다."​ 두 문장은 모두 'NP-은 없다'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그 구조에 관해 내가 느끼는 감각은 사뭇 다르다.​ 첫 문장의 주어 '모든 수화언어의 공통조상'은 분명히 하나의 명사구처럼 느껴지는 반면, '수어 문자로 쓰인 언어학 개론서를 본 적'을 두고 하나의 명사구라고 말하기는 좀 개운치 못한 느낌이 있다.​ 왜 그게 개운치 못한지 내가 여기서 완벽히 설명할 자신은 없으나 아마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감각을 공유할 것이다.​ 그런 감각에 대해 일단 아래와 같은 점을 짚을 수 있다.​ "수어 ..

언어학 2025.01.05

언어의 발음이란 자음과 모음이 다가 아니다

https://youtu.be/SwVANDKzG60?feature=shared“O'Neill(2014)에 따르면 피라항어 사용자들(특히 남성)은 성조와 음절무게(? syllable weight)가 유지되는 한 저렇게 자음을 막 바꿔 말하곤 한다는군요.사진의 단어에 대해 맨 위에 제시된 발음이 제일 흔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런 랜덤 교체가 잘 일어난다고 하고,화자에 따라 단어의 특정 위치에서는 /p/, /t/, /k/, /ʔ/ 가 interchangeable하다고.사전에 실려 있는 어휘의 모습을 떠올리면 저한테는 ‘정확히 고정된 분절음의 연쇄’라는 이미지가 가장 대표적인데,적어도 피라항인들에게는 그렇지 않고 성조와 음절무게가 훨씬 중요한가 보네요.음운론에서 분절음이 중심이고 나머진 곁다리란 이미지가 어딘가에..

언어학 2024.12.29

수어의 동시성(비선형적 형태통사론) - 언어학자 페이스북에 댓글 달기

1. 수어의 형태소 중에는 음소(‘수어소’) 여러 개가 앞뒤 순서를 따질 수 없이 동시에 표현(‘발음’)되는 것들이 아주 많다.그리고 두 개 이상의 형태소가 결합할 때 형태소 하나의 음소 일부가, 그 형태소와 결합하는 다른 형태소의 음소로 대체되어 버리는 경우, 게다가 그 두 개 이상의 형태소에 속하는 모든 음소가 동시에 표현되는 경우도 아주 많다.이러한 수어의 특징(‘동시성’)은 음성언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아마 이렇게만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예를 들어 보겠다.(그림으로 곧장 표현하면 편할 텐데 아쉽게도 당장은 여의치가 않아서 글로 대체한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시도해 보겠다.)아래는 한국수어의 표현들을 간략히 기술한 것이다. (수위, 수향이나 수동의 정확한 양상 등 동..

언어학 2024.11.30

언어의 발음에 존재하는 안전장치, 그리고 언어변화 - 경제성과 명확성의 경쟁, 'splits follow mergers'

요새 아랍어 듀오링고를 하고 있다.  아랍어 듀오링고 하는 중이번 수능 제2외국어를 다 풀어 보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올렸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래서 아랍어 공...blog.naver.com  이번에는 아래 두 가지 음절을 듣고 구분하는 문제가 있었다. (뭐 그렇게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대강...) تاب/taːb/ طاب/tˤaːb/ 두 음절은 첫 자음도 /t/ vs /‏tˤ/ 로 다르지만,적어도 듀오링고 음성에서는 모음에도 잉여적인 단서를 넣어서 변별을 용이하게 하는 것 같다. 전자의 모음은 [æ]에 가깝게 들릴 때가 많고(대충 ‘때앱’처럼 들림. IPA로 적자면 [tæːb])후자는 [ɑ]에 가까울 때가 많은 듯.(대충 ‘떠업’처럼 들림. IPA로 적자면 [tˤɑːb])아니면 뭐 떠압 이라고 하..

언어학 2024.11.29

‘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의 어색한 정보구조

‘누구누구 님이 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실은 ‘누구누구 님이 스토리를 게시했는데 그 스토리는 곧 만료됩니다.’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언어학방 참괴 님이 ’띵킴 님이 게시한 스토리가 곧 만료됩니다‘로 정리해 주심)(인스타를 잘 사용하지 않는 내가 뭔가를 오해한 게 아니라면,)‘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라는 문장은 한국인인 나한테 있어서는 정보 포장(information packaging)이 좀 어색한 문장으로 느껴진다.곧이곧대로 그냥 읽으면 인스타그램에 24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만 유효한 새로운 종류의 스토리 기능이 생겨난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원래의 스토리 기능은 24시간 유효하지만 저 누구누구 님이 올린 스토리는 한두 시간 뒤에 만료되는 특이한 스토리라서 ‘곧 만료되는 스토..

언어학 2024.11.25

‘여보’의 지칭어 용법에 관한 소고 - 규범주의를 생각함

‘호칭어’는 ‘아빠, 밥 줘!’에서의 ‘아빠’처럼 남을 직접 부르는 말이고, ‘지칭어’는 ‘이 옷은 아빠가 사 준 거야.’에서의 ‘아빠’처럼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의 친족어(kinship terms,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부르는 말) 중에는 위에 제시한 ‘아빠’의 예문과 같이 호칭어로도 쓰이고 지칭어로도 쓰이는 말들이 있다. ‘엄마’, ‘아빠’, ‘언니’, ‘누나’, ‘형’ 등을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하면 모두 ‘(어떠어떠한 사람)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이르는 말’이라 함은 지칭어로 쓰인다는 뜻이고 ‘부르는 말’이라 함은 호칭어로 쓰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옷은 형이 사 준 거야.’(지칭)도 자연스럽고 ‘형, 밥 줘!’(호칭)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부부간에 사..

언어학 2024.11.16

스와힐리어가 재미있는 이유 (feat. 듀오링고, 언어평등)

듀오링고를 다시 시작했다.되도록이면 매일 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스와힐리어가 재미있어서 스와힐리어를 하고 있다.​주로 듀오링고로 연습하고, 듀오링고에 없는 문법 설명이나 도표 같은 것은 #언어평등스와힐리어첫걸음 교재를 참고하고 있다.​(스와힐리어에는 매우 다양한 명사 부류가 있고, 명사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그리고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소가 등장하기 때문에 도표를 보며 암기하는 과정이 필수이다.)​내가 느끼는 스와힐리어의 매력은 대략 이런 것이다.동사-논항 일치 표지가 어간의 앞에 나타난다는 점도 낯설어서 재미있고, (뭐 세계에 이런 언어는 많겠지만, 내가 이제껏 배워 본 언어 중에서는 유일하다.)다양한 명사 부류에 따라 명사구 의존어들에 일치 표지가 각기 달리 붙는다는 점도 매..

언어학 2024.11.10

이슬람교 기도 시간 알림 '아잔'의 표기에 관한 짧은 영상 (feat. 화자 마자 브라자)

https://youtube.com/shorts/eR38ceQeLj8?feature=share 작년 신혼여행 출국길에 두바이 공항을 경유했다.(신혼여행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올려 보겠다.)​두바이에 내리고 얼마 안 되어서, 공항에 큰 소리로 어떤 아랍어 방송이 나왔다.아랍어를 모르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난생 처음 듣는 방송이었다.​처음 듣는 소리이기는 했지만, 이내 어렸을 때 '가로세로 세계사'에서 읽었던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 알림'인가 보다, 하고 추측할 수 있었다.​그때는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몰랐는데, 최근에 검색해 보고 '아잔'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잔'의 원어는 아랍어 أذان이다.로마자로는 대략 'adhān과 같이 옮길 수 있고, ('는 성문 파열음)국제..

언어학 2024.11.04

수어(수화)는 세계공용어가 아닙니다 - 유튜브 영상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번 했던 이야기지만 수어는 만국 공통어가 아니다.(너무 여러 번 한 얘기라... 읽으시는 분들이 좀 질리실지도)​수어가 만국 공통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내가 자꾸 묘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수어가 단순히 뭔가를 흉내내기만 하는 판토마임이나 인공 언어가 아니라, 음성언어와 똑같이 자연발생한 자연언어이며,​저마다 고유한 어휘와 문법, 심지어 그 수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청인이라면 절대 곧장 이해할 수 없는 관용 표현까지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냄새 잡다'가 한국수어로 무슨 뜻인지, 수어를 배워 본 적 없는 한국 청인은 절대 모를 것이다.)​그 자체로 완전한 언어 체계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수어의 정체를 오해하시는 분들에..

언어학 202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