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SwVANDKzG60?feature=shared
“O'Neill(2014)에 따르면 피라항어 사용자들(특히 남성)은 성조와 음절무게(? syllable weight)가 유지되는 한 저렇게 자음을 막 바꿔 말하곤 한다는군요.
사진의 단어에 대해 맨 위에 제시된 발음이 제일 흔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런 랜덤 교체가 잘 일어난다고 하고,
화자에 따라 단어의 특정 위치에서는 /p/, /t/, /k/, /ʔ/ 가 interchangeable하다고.
사전에 실려 있는 어휘의 모습을 떠올리면 저한테는 ‘정확히 고정된 분절음의 연쇄’라는 이미지가 가장 대표적인데,
적어도 피라항인들에게는 그렇지 않고 성조와 음절무게가 훨씬 중요한가 보네요.
음운론에서 분절음이 중심이고 나머진 곁다리란 이미지가 어딘가에 존재한다 생각하는데 그런 이미지를 깨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비분절 음운하고는 무관하지만 한국어의 산발적인 경음화라든가 평소 낯설게 인식하지 못하는 방언적 어형들도 뭔가 분절음의 고정성이란 이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네요.
(내가 주로 쓰는 어형과는 몇 개의 분절음이 다른데도 그닥 낯설게 여기지 않는 방언적 어형들이 존재한다. -> 어휘부가 그다지 빽빽하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accidental gap이 많고 잉여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 동음이의어 글에서 말했듯이.)
여담으로 이건 유튜브에 ‘functional load(기능부담량)’이라고 검색하다가 발견한 영상이고,
자유로운 자음 교체를 소개하는 이 장면은
- 피라항어에서 성조의 기능부담량이 아주 크다는 사실,
- 그래서 피라항어는 분절음을 없애는 휘파람 언어로 사용하는 게 가능한데
- 실은 그게 성조 때문만은 아니고, 음절 무게에 대한 지식 덕분에 각 슬롯에 출현 가능한 분절음이 어느 정도 추려져서 복원하기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사실,
- 그리고 당연하지만 맥락 정보가 복원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
을 말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양치질하는 한국인의 말을 대략 알아들을 수 있을 때가 많은 것도 비슷한 원리인 듯. 성조는 아니어도 문장단위 억양 같은 게 이해에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맥락은 물론이고.)
Information이란 책에 나오는 ‘말하는 북’ 이야기도 참고가 된다.
이상의 이야기를 (약간 더 두서없는 형식으로) 언어학 방에 공유했더니,
평소 수어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아주 재미있고 좋은 사례로 보였다.
“청인들이 처음 수어를 배울 땐 수지신호[손모양, 손의 움직임 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농인들처럼) 시선[이나 표정] 등 비수지신호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심지어 자연스러운 수어에서는 수형 따위가 특히 비우세손에서 자주 바뀌곤 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수지신호를 음성언어의 분절음처럼 대응해서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이어서 일본수어에서 두 손으로 표현하는 단어 중에, 우세손의 손모양만 제대로라면 비우세손의 손모양은 ‘무표수형(상대적으로 편하고 수어에서 흔히 쓰이는 손모양)’ 중 어느 것이든 상관없고, 심지어 짐을 든 경우 등이라면 비우세손은 아예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단어를 몇 개 소개해 주셨다.
- ‘たとえば’ 표현시 비우세손은 パー(묵찌빠의 빠인 듯)형이어도 되고, グー(주먹)형이어도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없어도 된다. 손모양이 한국수어 ‘만약’과 같은 점으로 보아 ‘설령, 만약’의 たとえば..? ‘예를 들어’에도 같은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다.
(パー、グー 등의 표현을 새로 배웠다)
- 일본수어 ‘이유/의미’도 마찬가지.
월운 님이 ‘중국인은 분절음은 맞게 발음해도 성조가 바뀌면 잘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하셔서 아래 연구가 다시 떠올랐다.
"The Functional Load of Tone in Mandarin is as High as that of Vowels"
https://faculty.washington.edu/levow/papers/fltonemandarin.pdf
* 기능 부담량을 정보이론의 엔트로피 개념을 사용하여 계산한 연구 (내가 가까운 시일 안에 제대로 이해해 보기는 어려울 성싶다 ㅎ...)
중국어 음성이나 텍스트에서 모음을 제거하거나 ㅚ 같은 걸로 통일해 버린 것과
중국어 음성이나 텍스트에서 성조를 없애거나 통일해 버린 것은
서로 복원 난이도가 거의 같을 거란 뜻인 듯.
위에서 수어 이야기를 하신 분이 지적해 주신 점인데,
피라항어나 수어에서 분절음(또는 수지신호)이 덜 고정적인 데에는, 대다수 피라항어나 수어 사용자들에게 문자문화가 없다는 사실이 관련 있어 보인다.
글을 (특히 표음문자를) 아는 것이, 잠재적으로 가능했을 언어변화를 막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종종 생각했었다. 나도 아마 글을 배우기 전에는 많은 단어를 지금과 다르게 인식하고 발음했을 것이다.
문자 지식의 이런 성격은 표준어 규범 교육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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