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55

언어학을 배우면 외국어를 잘할까? (Language Simp의 도발적 영상에 대한 간략 감상)

Language Simp라는 폴리글롯 유튜버가 한 시간 전에 도발적인 영상을 하나 올렸다. 흥미로운 말거리가 몇 개 떠올라 감히 말을 얹어 본다. ​ 내 생각은 대략 학습 초기에 모든 분야에서의 정밀성에 집착하는 일은 의욕을 저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야겠으나, 학습 목표를 중고급으로 올려 갈수록 언어학의 기술(description)을 참고하는 일이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적어도 교수자는 언어학적으로 정밀한 지식을 최대한 알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교수자가 아는 언어학적 지식을 현장에서 언제 얼만큼 학습자에게 명시적으로 전달할지는 별개의 문제고 또한 교수자 역량의 일부다. 와 같이 정리되어 가는 듯.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밝혀 두자면, 사실 이런 주제에 대해 자신있고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는 유..

언어학 2024.05.02

'빠르다~이르다'와 '느리다~늦다'의 비대칭 - 코퍼스, 의미 지도와 CLICS, 속도와 시점의 다의성

나는 가끔 의도치 않게 불을 켠 채로 잠이 든다. (이 글에서 이야기했듯)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 습관은 덜 고쳐져서, 가끔 아내가 먼저 잠들면 옆에서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책을 보다가 불을 미처 못 끄고 잠들어 버리곤 한다. 몹시 미안하게도, 그럴 때는 아내가 새벽에 깨서 불을 끄고는 다시 잠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상황 파악을 하고 나면, 내 부주의 때문에 나 자신도 아내도 제대로 푹 쉴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자책이 내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런 상황이면 아내는 나를 원망할 법도 한데, 자기는 불을 켠 채로 자는 것에 대해서 딱히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늘 무덤덤하게 넘겨 준다.) '불 키다' 글을 썼던 날도 딱 그런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 날이 설날이었다. 날짜 감각이...) '몇 시에 ..

언어학 2024.02.11

"불 키고 자면 안 돼요" - '키다'는 왜 생겨난 걸까?

어렸을 때부터 내게는 아주 좋지 못한 습관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불을 켜 두고 침대에 엎드려 밤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거나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뭘 하다가 불을 끄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면 다음 날이 무척 피곤하다. 아무리 많이 자도 제대로 잔 것 같지가 않고, 왠지 모르게 몸 여기저기가 아픈 느낌이 든다. 어제도 잠들기 전에 미처 불을 끄지 못했다. 예전에 구매했던 고 가쓰히로(오승호) 작가의 소설 을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데, 어제도 밤 늦게까지 그 소설을 보다가 그만 그대로 잠들어 버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왠지 모르게 몸이 찌뿌둥하고 피로가 덜 풀린 느낌이 든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불을 안 끄고 자면 정말 몸에 좋지 않을까? 검색..

언어학 2024.02.10

ChatGPT에게 '음운 규칙 프로그램'의 코딩과 디버깅을 시켜 보았다

뒤늦게지만 ChatGPT에게 코딩을 시켜 보았다. 명령어 하나하나마다 어떤 기능을 하는 건지 설명하는 주석도 잘 달아 주고 아주 친절하게 짜 준다. 처음엔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것 같지만, 간단한 말로 피드백을 주면 알아서 잘 반영하고 디버깅한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놀랍다. 무료 버전(3.5)인데도 말을 잘 알아들어서 신기하다. 언어와 매체 국어 문법 시간에 익히 배워 알고 있듯이, 한국어의 예사소리(평폐쇄음과 평파찰음)는 유성음 사이에서 유성음으로 바뀐다. 예를 들어 /ㄱ/은 어두에서 무성파열음 [k]로 실현되지만, 유성음 사이에서는 유성파열음 [g]로 실현된다. 이 규칙을 적용하여, /k/ 등을 받아서 그 앞뒤에 있는 음소가 유성음인지 체크하고 그들이 유성음이면 /k/..

언어학 2024.01.20

구독자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

K Klein이라는 언어학 유튜버의 영상을 하나 소개한다. 내가 여기서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잘 풀어 주는 영상이다. 특히 이 글에서 다룬 이야기와 관련이 깊다. ​ 2:03부터 본격적으로 동사의 주어 일치가 왜 (통념과 달리) 쓸모있는지를 다룬다. 잘 시청하면 겸사겸사 영국영어 듣기 연습도 된다. (개인적으로 'the idea is ...'를 'the idear is ...'처럼 발음하는 영국영어 특유의 intrusive r이 재미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B_uGsgXKdk 내용이 다 재미있고 마음에 든다. ​ What People Get Wrong About Language - The Ithkuil Fallacy by K Klein https://blog.n..

언어학 2024.01.19

[언어유형론] 교착어, 굴절어, 고립어(분석어)

'언어유형론'은 언어의 유형에 관한 학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가 사람을 성격에 따라 16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것처럼, 언어도 여러 기준에 의해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 MBTI 검사에서 사람의 성격 유형이 '지아는 INFP, 서아는 ESTP, ...'하는 식으로 나뉘듯이, 언어유형론의 접근을 대략 말하자면 '한국어는 A유형, 영어는 B유형, 중국어는 C유형' 하는 식이 된다. (+ 다만 언어의 유형은 16개 MBTI 유형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한 언어가 어느 유형이다 하고 말하는 것도 마냥 쉽거나 100% 정확한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여러 MBTI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각자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구경하는 일이 재미있듯이, 각 유형에 속하는 언어가 서로 어떤 특징을 ..

언어학 2023.12.16

내용어와 기능어, 실질형태소와 형식형태소 - '대명사'는 어느 쪽?

영어 문법을 배우다 보면 '내용어content word'와 '기능어function word'라는 개념을 접하게 된다. 그 개념은 국어 문법 시간에 배우는 '실질형태소', '형식형태소'의 정의와 아주 흡사하다. 얼마나 비슷하냐면, 영어 위키백과 'Content word' 문서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어휘형태소'이고 'Function word' 문서의 한국어 번역본은 '문법형태소'일 정도다. (다만 내용어와 기능어는 일단 단어word에 대한 분류이므로 접사 등에 대해서 적용할 수는 없다.) 한국어의 '사람', '배', '크-', '작-', '먹-', '자-' 등이 실질형태소이듯이 영어의 'person', 'pear(ㅋㅋ)', 'big', 'small', 'eat', 'sleep' 등은 내용어이고, 한국어의..

언어학 2023.12.12

실질형태소와 형식형태소 - 국어 문법 수업에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기

고등학교에서 언어와 매체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실질형태소(어휘 형태소 lexical morpheme)와 형식형태소(문법 형태소 grammatical morpheme)를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영문법에서 배우는 '내용어content word'와 '기능어function word'도 비슷한데,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실질형태소’는 실질적 의미가 있는 형태소이고, ‘형식형태소’는 실질적 의미가 거의 없고 형식적 의미만 있는 형태소이다. 구체적 의미 내용의 양을 따지자면, 보통 실질형태소 쪽이 형식형태소보다 구체적인 의미 내용을 많이 갖고 있다. 이때 '실질적 의미'라는 것은 문법적 기능이 아니라 바깥의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물이나 그 속성, 또는 언어 바깥의 세계에서 일어..

언어학 2023.12.11

동사에 주어 일치가 생기고 유지되는 이유? [일상의 언어유형론과 기능주의 언어학]

머리를 자를 때의 일이다. (‘머리를 자르다’는 고빈도 연어인 것 같은데 ‘머리카락을 자르다’는 이런 자리에서 잘 안 쓰는 듯..? 떠오르는 이미지가 좀 다르다.) 매달 가는 곳이라서 머리를 잘라 주시는 분이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알고 계셨고, 본인도 곧 결혼하실 예정이시라 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했다. 그런데 미용실에 틀어져 있는 음악 소리, 드라이기 소리, 바리깡 소리가 계속 섞이니까, 상대방이 말하는 문장의 서술어는 얼핏 들리는데 그 문장의 주어가 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 술을 안 좋아해서 돈도 아끼고 좋(다?)’와 같은 말들을 들을 때 결혼을 준비하는 헤이디자이너 본인의 커플이 그렇다는 말인지 아니면 머리를 잘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나 우리 부부가 그..

언어학 2023.11.19

수어 문자 퀴즈 해설 -1- (언어학 올림피아드 방식의 스토키 표기법 한국수어 문제 풀이)

아래 글에서 소개한 Stokoe notation 문제의 풀이법입니다. 곧장 정답을 알려드리지는 않고, 문제 풀이 순서에 따라 단계별로 힌트가 되는 정보들을 차례차례 공개하겠습니다. 문제에서 언급하였듯이, 스토키 표기법에서는 얼굴 표정이나 입모양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https://brunch.co.kr/@saokim/36 간단한 수어(수화) 문자 퀴즈 (스토키 표기법) KSL in Stokoe notation | 문제 1. 의 한국수어 단어를 각각 '스토키 표기법'으로 받아적은 다음 순서를 뒤섞어 에 나열하였습니다. 에 나열한 1번부터 7번까지의 자료가 각각 어느 brunch.co.kr 언어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풀 때는 데이터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에 속하는 케이스의 개수를 세는 데서 출발..

언어학 202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