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55

수어의 동시성(비선형적 형태통사론) - 언어학자 페이스북에 댓글 달기

1. 수어의 형태소 중에는 음소(‘수어소’) 여러 개가 앞뒤 순서를 따질 수 없이 동시에 표현(‘발음’)되는 것들이 아주 많다.그리고 두 개 이상의 형태소가 결합할 때 형태소 하나의 음소 일부가, 그 형태소와 결합하는 다른 형태소의 음소로 대체되어 버리는 경우, 게다가 그 두 개 이상의 형태소에 속하는 모든 음소가 동시에 표현되는 경우도 아주 많다.이러한 수어의 특징(‘동시성’)은 음성언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아마 이렇게만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예를 들어 보겠다.(그림으로 곧장 표현하면 편할 텐데 아쉽게도 당장은 여의치가 않아서 글로 대체한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시도해 보겠다.)아래는 한국수어의 표현들을 간략히 기술한 것이다. (수위, 수향이나 수동의 정확한 양상 등 동..

언어학 2024.11.30

언어의 발음에 존재하는 안전장치, 그리고 언어변화 - 경제성과 명확성의 경쟁, 'splits follow mergers'

요새 아랍어 듀오링고를 하고 있다.  아랍어 듀오링고 하는 중이번 수능 제2외국어를 다 풀어 보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올렸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래서 아랍어 공...blog.naver.com  이번에는 아래 두 가지 음절을 듣고 구분하는 문제가 있었다. (뭐 그렇게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대강...) تاب/taːb/ طاب/tˤaːb/ 두 음절은 첫 자음도 /t/ vs /‏tˤ/ 로 다르지만,적어도 듀오링고 음성에서는 모음에도 잉여적인 단서를 넣어서 변별을 용이하게 하는 것 같다. 전자의 모음은 [æ]에 가깝게 들릴 때가 많고(대충 ‘때앱’처럼 들림. IPA로 적자면 [tæːb])후자는 [ɑ]에 가까울 때가 많은 듯.(대충 ‘떠업’처럼 들림. IPA로 적자면 [tˤɑːb])아니면 뭐 떠압 이라고 하..

언어학 2024.11.29

‘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의 어색한 정보구조

‘누구누구 님이 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실은 ‘누구누구 님이 스토리를 게시했는데 그 스토리는 곧 만료됩니다.’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언어학방 참괴 님이 ’띵킴 님이 게시한 스토리가 곧 만료됩니다‘로 정리해 주심)(인스타를 잘 사용하지 않는 내가 뭔가를 오해한 게 아니라면,)‘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라는 문장은 한국인인 나한테 있어서는 정보 포장(information packaging)이 좀 어색한 문장으로 느껴진다.곧이곧대로 그냥 읽으면 인스타그램에 24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만 유효한 새로운 종류의 스토리 기능이 생겨난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원래의 스토리 기능은 24시간 유효하지만 저 누구누구 님이 올린 스토리는 한두 시간 뒤에 만료되는 특이한 스토리라서 ‘곧 만료되는 스토..

언어학 2024.11.25

‘여보’의 지칭어 용법에 관한 소고 - 규범주의를 생각함

‘호칭어’는 ‘아빠, 밥 줘!’에서의 ‘아빠’처럼 남을 직접 부르는 말이고, ‘지칭어’는 ‘이 옷은 아빠가 사 준 거야.’에서의 ‘아빠’처럼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의 친족어(kinship terms,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부르는 말) 중에는 위에 제시한 ‘아빠’의 예문과 같이 호칭어로도 쓰이고 지칭어로도 쓰이는 말들이 있다. ‘엄마’, ‘아빠’, ‘언니’, ‘누나’, ‘형’ 등을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하면 모두 ‘(어떠어떠한 사람)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이르는 말’이라 함은 지칭어로 쓰인다는 뜻이고 ‘부르는 말’이라 함은 호칭어로 쓰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옷은 형이 사 준 거야.’(지칭)도 자연스럽고 ‘형, 밥 줘!’(호칭)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부부간에 사..

언어학 2024.11.16

스와힐리어가 재미있는 이유 (feat. 듀오링고, 언어평등)

듀오링고를 다시 시작했다.되도록이면 매일 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스와힐리어가 재미있어서 스와힐리어를 하고 있다.​주로 듀오링고로 연습하고, 듀오링고에 없는 문법 설명이나 도표 같은 것은 #언어평등스와힐리어첫걸음 교재를 참고하고 있다.​(스와힐리어에는 매우 다양한 명사 부류가 있고, 명사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그리고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소가 등장하기 때문에 도표를 보며 암기하는 과정이 필수이다.)​내가 느끼는 스와힐리어의 매력은 대략 이런 것이다.동사-논항 일치 표지가 어간의 앞에 나타난다는 점도 낯설어서 재미있고, (뭐 세계에 이런 언어는 많겠지만, 내가 이제껏 배워 본 언어 중에서는 유일하다.)다양한 명사 부류에 따라 명사구 의존어들에 일치 표지가 각기 달리 붙는다는 점도 매..

언어학 2024.11.10

이슬람교 기도 시간 알림 '아잔'의 표기에 관한 짧은 영상 (feat. 화자 마자 브라자)

https://youtube.com/shorts/eR38ceQeLj8?feature=share 작년 신혼여행 출국길에 두바이 공항을 경유했다.(신혼여행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올려 보겠다.)​두바이에 내리고 얼마 안 되어서, 공항에 큰 소리로 어떤 아랍어 방송이 나왔다.아랍어를 모르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난생 처음 듣는 방송이었다.​처음 듣는 소리이기는 했지만, 이내 어렸을 때 '가로세로 세계사'에서 읽었던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 알림'인가 보다, 하고 추측할 수 있었다.​그때는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몰랐는데, 최근에 검색해 보고 '아잔'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잔'의 원어는 아랍어 أذان이다.로마자로는 대략 'adhān과 같이 옮길 수 있고, ('는 성문 파열음)국제..

언어학 2024.11.04

수어(수화)는 세계공용어가 아닙니다 - 유튜브 영상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번 했던 이야기지만 수어는 만국 공통어가 아니다.(너무 여러 번 한 얘기라... 읽으시는 분들이 좀 질리실지도)​수어가 만국 공통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내가 자꾸 묘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수어가 단순히 뭔가를 흉내내기만 하는 판토마임이나 인공 언어가 아니라, 음성언어와 똑같이 자연발생한 자연언어이며,​저마다 고유한 어휘와 문법, 심지어 그 수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청인이라면 절대 곧장 이해할 수 없는 관용 표현까지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냄새 잡다'가 한국수어로 무슨 뜻인지, 수어를 배워 본 적 없는 한국 청인은 절대 모를 것이다.)​그 자체로 완전한 언어 체계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수어의 정체를 오해하시는 분들에..

언어학 2024.10.12

NotebookLM으로 내 글 팟캐스트 만들기 (동음이의어는 왜 사라지지 않을까?) ...+ 한글날이면 언어덕후는 속이 터진다

1. 동음이의어 글을 NotebookLM에 넣어서 가상의 팟캐스트로 만들어 보았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을 했는고 하니,발단은 이렇다.​독일의 언어학자 Martin Haspelmath가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글을 하나 올렸다.   페이스북 링크 요약하자면,굴절과 파생에 대한 자기 논문을 Google NotebookLM에 넣어서 팟캐스트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직접 해 보니, 하스펠마트가 말하듯 전혀 어렵지 않다.)​사진 밑에 달아 둔 링크에 들어가서 하스펠마트가 올린 dropbox 링크를 눌러 보면 실제로 들어 볼 수 있다.​일단은 실제 팟캐스트처럼 들리는 퀄리티에 놀랐고,​한 쌍의 남녀가 정말 팟캐스트 진행자같은 말투로, 사뭇 진지한 태도로언어덕후나 이야기할 것 같은 주제를 열심히 다루는 걸 보니 웃..

언어학 2024.10.10

DDP 수어문자 타이포그래피 전시회 - <문자의 다양한 형태들>展

저번에 어느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수어문자 타이포그래피 관련 전시회를 기획하시다가 제 블로그 수어문자 글을 보시고 메일로 자문을 주셨습니다. 제 역량 밖이라 건너건너 수어문자 전문가 선생님을 소개해 드렸었는데 이 전시가 곧 진행이 되네요! 제가 한 건 없지만 좋은 기획인 것 같아서 한 번 홍보해 봅니다. DDP 오픈큐레이팅 vol.34 展 일정 2024-09-27 ~ 2024-10-26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문 시간 10:00-20:00 (연중무휴) 관람비용 무료 https://ddp.or.kr/index.html?menuno=230&siteno=2&bbsno=535&boardno=15&cateSched=15&bbstopno=535&act=view전체일정보기,프로그램 > DDP(KOR)DD..

언어학 2024.09.16

[언어유형론] 중국어의 어순이 특이한 이유 - 관계절과 SVO 어순

중국의 역사 드라마 을 얼마 전에 정주행했다. 중드 연희공략(延禧攻略) 간략 리뷰 + 대사 받아쓰기청나라 건륭제 때의 비빈 암투를 다룬 ‘사이다패스’ 드라마 연희공략(延禧攻略 yan2 xi3 gong1 lve4)을 7...blog.naver.com 드라마를 보다 보니 문득, 중국어의 문법에 대해 새삼 특이한 점이 느껴졌다. "可是她是一个连自己都保护不了的可怜人。" [그러나] [그는] [이다] [한 명의] [자기자신도 보호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 "그러나 그는 자기자신도 보호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었어." 위 문장을 보면, 관계관형절 '자기자신도 보호하지 못하는'은 그것이 수식하는 명사 '(불쌍한) 사람'의 앞에 위치한다. 중국어가 동사를 목적어 앞에 두는(VO) 언어임을 고려하면 이것은 아주 특이한..

언어학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