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제로 받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내용 등 자세한 후기는 좀더 밑에 적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궁금한 분들이 질문 위주로 보기 좋게 질문은 볼드체로 표시했다.
결과가 나오면 결과도 공유하겠다. 너무 심하게 불만족스러운 결과만 아니라면...
OPI는 OPIc의 'survey'를 아예 인터뷰에 집어넣은 느낌이다. (OPIc이 OPI의 컴퓨터 버전이니까 개발 순서는 반대겠지만)
그래서 OPIc의 1번 자기소개에 해당하는 부분이 OPI에서는 확 늘어나고, 거기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중반부 인터뷰 질문을 시험관이 즉석에서 구성하는 느낌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OPI의 질문 내용이 얼마나 나한테 커스텀되는 건지 궁금해했었는데,
겪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답변자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롤플레이 말고는 거의 다 앞에서 얘기한 것들과 연관성이 있는 질문이거나 내가 직접 골라서 '이 주제로 질문해 주세요'라고 했던 내용이었다.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내 경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그랬거나... 만약 그랬다면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내 발화가 전체적으로 자꾸 내 관심 분야에 관한 주제로만 맴돌았고, (그나마도 만족스럽게 말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롤플레이에서 좀 익숙하지 않은 주제가 나오니까 확실히 어휘 인출 속도도 떨어지고 발화량도 줄어들었기 때문에 영어 능력 전반을 고려하는 평가에 악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선 스스로 총평: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못하고, 기대했던 이벤트가 허무하게 끝난 게 좀 아쉽다. (기대감으로 일상을 버티게 한 걸로 충분한지도 모르지만)
아쉬운 이유는 질문받은 주제에 안 맞는 얘기, 논리적이지 못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이다. 논리나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외국어로 말할 때는 비논리적으로, 주제를 벗어나서 횡설수설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그리고 OPIc은 컴퓨터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거니까 내 논리가 부실하든 주제를 벗어나든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는데, OPI에서는 내 말을 실시간으로 듣고 바로바로 피드백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히 더 주눅이 들고 부정적인 자기평가를 계속 한 것 같다.
그것과 별개로도, 왠지 모르게 내가 말하는 방식을 듣는이가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았다. OPI도 오픽처럼 발화량이 많아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을 많이 하기 위해 할 말 안 할 말 쓸데없는 소리까지 다 했다. 똑같은 말 반복도 자꾸 한 거 같고... 그러다 보니까 불필요하게 부정적인 소리도 하고 눈치 없는 소리도 많이 하고 그런 것 같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까 거기선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거기선 그렇게 부정적인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이렇게 틀어서 긍정적으로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들이 많이 떠오른다.
난 할 말 다 했는데 상대방(시험관)이 별 반응 없이 침묵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괜히 당황하고 말을 더 늘려서 쓸데없는 소리가 더 섞인 것도 같다.
그래도 말이 막 심하게 막히거나 공백이 길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AL보다는 좋은 성적이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16만원을 들일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만한 점수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나는 어떤 시험이든 보고 난 직후에 스스로의 퍼포먼스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는 편이고 외국어 말하기 시험일 때는 더욱 그러는 경향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기대를 해 봐도 좋을지 모르겠다.
끝났을 때는 33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영어 OPI 시험 후기
강남은 멀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OPI 시험을 볼 수 있는 강남역 '쏭즈캠퍼스 별관'은 입구를 찾아내기가 힘들다. (이상의 두 문장에는 거친 정도부사를 썼다가 지웠다.)
OPI 응시 계획이 있는 분들은 무조건 20분은 일찍 도착해야 할 듯... 모스버거 건물과 같은 건물이고, 모스버거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측면에 나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늦어서 열심히 뛰었다. 결국 1-2분 늦었다. 무슨 근거인지 좀 늦어도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험 끝나고 안내문을 다시 보니까 5분 늦으면 노쇼 처리되어 응시 불가였다. 약간만 더 늦었어도 16만원을 그냥 날릴 뻔했다.
일찍 오셔야 된다고 감독관 분한테 몇 마디 듣고서 방음부스처럼 생긴 독방에 들어갔다. 다른 방이 두 개 있었고 거긴 컴퓨터가 많았는데 오픽 시험이 치러질 예정인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독방에 들어갔다.
신분증을 확인했고, 휴대폰을 끄라고 해서 휴대폰을 껐고, 시험이 끝나면 그냥 알아서 나가면 된다(?!)고 했다.
감독관 분이 확인 코드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어 주셨다. 스카이프(skype) 프로그램으로 전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감독관은 전화가 걸린 걸 확인하고 헤드셋을 나한테 넘기고서는 옆방의 오픽 시험을 감독하러 자리를 떴다.
독방에는 나와 컴퓨터만이 남았다. (문이 처음엔 열려 있었는데 시험 보다 보니까 닫혀 있었다. 감독관이 중간에 닫은 듯)
미국인 시험관이 전화를 받았다. 남자 목소리였다.
Hello?가 한번씩 오가고, 서로 이름을 말하고 how are you?가 오갔다. 개인적으로 How are you?에는 어떻게 대답하는 게 잘 대답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디에서 전화하고 있는 건지 묻길래 남한 서울이라 대답했다. 거기 날씨가 어떻냐길래 기대했던 것보다 춥다고 대답했다. my hands are freezing, 늦어서 뛰었는데도 I'm not even sweating 이라고 말했다.
시험자가 Winter's just around the corner인가 보다고 하길래, climate change 때문에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거 아니겠냐고 했다.
이상의 대화도 시험 평가에 들어가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시험관이 '이제부터 시험 안내문을 읽겠다. 다 읽고 나서 질문이 없으면 인터뷰를 시작하겠다.'라고 했다.
시험 안내문을 읽는 동안 좀 당황했다. 음질이 생각보다 별로여선지 단어가 어려워선지 안내문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예상외로 좀 긴장한 상태로 시작했다. 다행히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은 잘 들렸다.
이제 인터뷰를 시작하겠다고, 자기소개를 해 달라고 했는데, professional life에 대해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취미 등등에 대해 말하라고 했다.
'professional life'라는 게 아마 직업적인 삶 얘기겠지만 꼭 직업 얘기만 해야 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고, 오픽이 그렇듯이 꼭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 텐데, 개인적인 생각들 때문에 professional life라는 말에서 좀 기가 죽었다.
그래서 I'm not particularly satisfied with my job(, 그래서 직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다?) 라는 식으로 운을 뗐다. 이것부터가 분위기를 따운시키는 에라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당장 시험 전날에 이 직업과 내 삶에 대해 긍정하고 열심히 해 보자고 다짐하는 건전한 대화를 아주 즐겁게 나눠 놓고서 직업 얘기에 도로 저렇게 반응한 거다. 저렇게 시작했더라도 더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아니면 차라리 그냥 직업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고 학생이라고 말해 버리거나, 직업 밖에서 내가 프로의식을 갖고 있는 영역에 대해 (그것도 별로 자신은 없지만) 말해도 됐을 텐데 좀 아쉽다. 태평양 건너 미국인이 내가 뭘 해서 먹고사는지 알 게 뭐야...
하여튼 내가 실제로 직장에서 뭘 하는지를 몇 마디 설명하고서, 할말이 더 없는 거 같아서 I'm not sure how long I am supposed to talk about each topic 이라고 했는데, 시험관이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냥 자기가 알아서 조절하겠다는 말을 했었나?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을 좀 더 했었나 안 했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암튼 내가 '이제 할 말 다 한 거 같은데 취미 얘기로 넘어가도 되는지?' 하고 물어보니까, '아직, 직업 얘기를 더 해 봅시다.'라는 식으로 거절해서 좀 당황했다.
내가 내 직업에 대해 설명한 것 중에 좀 명확하지 않은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부분을 묻길래 나름대로 더 설명해 보려고 했는데 자꾸 얘기가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AmazingTalker에서 만났던 미국 선생님 두 명은 내가 내 직업을 잘 설명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때랑 뭐가 달랐던 건지... 예상치 못하게 좀 찝찝함이 남았다.
시험관은 내 설명을 이해한 건지 아니면 시간상 넘기기로 한 건지, 'thank you for your description(?)'이라고 하고서는 이제 취미 얘기를 해 보라고 했다.
취미 얘기에 대해서는... 내가 워낙 내 취미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하니까 할 말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만족스럽지 못했다. 소수언어 얘기나 수어 얘기, 블로그 이야기 같은 것도 했으면 훨씬 깔끔하고 기분 좋았을 것 같은데, 마냥 '외국어를 좋아해요'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니까 생각보다 얼마 오래 말하지 못하고 금방 침묵이 찾아와서 당황했다.
자기소개는 오픽 때처럼 하는 정도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는데 준비가 안일했다.
아무튼 외국어 공부 얘기, 예전에 오픽을 봐서 영어, 일어, 러시아어, 베트남어에서 AL, 중국어에서 IH을 받았던 얘기를 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대학에서는 베트남어를 전공했다고 했다.
오픽 성적이 잘 나왔다니 축하한다는 감독관의 말에 얼떨떨하게 반응했다.
오픽에서 이미 AL을 받아 봤는데 OPI에 응시하는 것은 더 높은 결과를 받고 싶어서인지,
이 시험을 보는 게 job에서 요구되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 'AL은 이미 expire되었고(expire 단어가 기억이 안 나서 잠깐 머뭇), 지금은 외국어랑 관련 없이 살고 있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어버려 가는 거 같아서 remind myself of what I love 하고 싶어서 이 시험을 보게 됐다.'라는 식으로 답한 것 같다.
(이렇게 적으니까 아주 깔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말도 못 하게 중구난방, 중언부언 하였다.)
외국어무새에 질렸는지 다른 취미는 없냐고 묻길래 국제 정치나 세계사 같은 것에도 관심이 있어서 그에 관한 영어 유튜브 영상도 보고 그런다고 말했다.
(여기서 아주 불필요하게 횡설수설 더듬더듬거렸다. 굳이 그럴 게 뭐였나 싶은데...)
(당장 전날 밤에도 캐나다 사람이 영어로 캐나다의 애국주의가 반미주의에서 태동했다는 걸 설명하는 재미있는 영상을 보다 잤는데, 그런 얘기는 왜 안 했나 모르겠다. 떠오르지 않았으니 못 한 거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내 표현이 오해를 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건지 나중에도 이걸론 별 얘기를 못 했다.
그리고 오픽에서 축구 얘기를 한 게 생각나서, 오픽에서 대답했듯이 전에는 축구를 했는데 요새는 다들 일로 개인사로 바쁘고 나도 바빠서 못 한다. 고등학교 때는 했었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서... I go to language exchange parties, not really parties, I go to language exchange meetups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근데 시험관이 시큰둥하기도 했고, 다른 얘기를 하라고 했는데 거기다 대고 또 외국어무새 대답을 한 거 같아서 좀 주눅이 들었다.
아마 여기까지가 중반부 인터뷰 질문 구상을 위한 자기소개 인터뷰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상의 내용에서 나온 답변자의 취미 같은 것에 기반해서 중반부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시험을 보는 동안에는 시험관이 그렇게 말해 준 것도 아니었고 그냥 대화가 주우욱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불연속적인 단계를 넘어간다고는 전혀 못 느꼈다.
다음 질문으로 '외국어에 그렇게 관심이 있다니 해외에서 지낸 적도 있을 것 같다. 해외에서 지낸 적이 있나?' 같은 질문이 나왔는데, 이 질문이 흐름상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어서 그냥 시험관이 진짜 궁금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면 시험 평가에 들어가는 질문인 건지가 헷갈렸다. 그래서 대충 짧게 대답했다.
만약에 질문이 '해외에서 지낸 경험에 대해 말해 보라'였으면 마음 편하게 먹고 내 성격대로 온갖 잡스러운 정보를 더해 가면서 길게 대답했을 텐데,
아마 질문이 '해외에서 지낸 적이 있나?'라는 yes-no question이었던 것 같고
게다가 아직 '자기소개' 파트가 안 끝난 것 같아서, 시험 후반부 진행에 영향이 있을까 봐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짧게만 대답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길게 대답하는 게 나았으려나 싶다.
하여튼 해외 경험이 세 번 있다고 운을 뗐다.
고등학교 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6일간 다녀온 얘기부터 했다. 겨우 6일이라서 maybe that doesn't count라고 했더니 시험관이 it counts라고 웃었던 거 같다.
대학 때 두 달 간 하노이에 다녀온 얘기도 했다. 거기서 베트남의 수어와 농사회를 연구하는 미국인 인류학 박사과정생과 교류했던 얘기도 했다. 너무 곁다리로 빠지는 것 같아서 그 얘기는 얼른 마무리했다. (내가 한국수어를 공부한 얘기, 한국 농인 분과 저녁을 먹으며 수어로 거의 full conversation을 나눠 봤다는 얘기도 분명 어딘가에서 했는데, 그 얘기를 어느 답변 파트에서 한 건지가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일본에 여행도 다녀왔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까 러시아 6일은 해당 안 되는 거 같다고 해 놓고 그보다 짧게 일본에 여행 다녀온 데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막상 써놓고 보니 그냥 적당히 길게 잘 대답한 듯)
이제 외국어 얘기 말고, 당신이 아까 말했던 관심 분야나 취미 중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요새 당신이 뉴스에서 많이 봤던 이슈로 어떤 게 있느냐' 같은 식으로 표현했던 거 같다.
말하자면 앞으로의 질문을 정하기 위한 질문인 셈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당신이 요새 뉴스에서 많이 봤던 이슈'라는 무거운 말에 속지 말고 그냥 아무거나 던져도 괜찮았을 것 같다.)
국제정치라거나 세계사라거나... 라길래 우크라이나 얘기를 꺼냈더니, 시험관은 내가 농담을 했거나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말을 한 듯이 반응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OPI에서 "부시 재임기간 동안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을 검토하고 찬반을 논하여라"라는 질문이 나왔었다길래 우크라이나 얘기도 정말 할 생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현재 진행중인 문제라서 그런지 좀 부적절했던 모양이다. (딴 얘기지만 나는 시험 때 헤드셋을 사용했는데, 나무위키에는 헤드셋이 아닌 일반 전화기 수화기로 시험이 진행된다고 서술되어 있다.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된 듯)
시험관은 그거 말고 다른 얘기를 해 보자고 했는데 내가 자꾸 '북한? 중국?' 거리면서 갈피를 못 잡으니까,
'세상에 전쟁도 일어나고 정말 심각한 문제도 많다. 그런데 그런 거 말고 좀 다른 건 없나?'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나의 눈치 없음에 대한 1주눅이 추가됐다.)
그래서 좀 고민하다가, '그러면 농인이나 수어에 대해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시험관은 아주 반가워하면서 바로 질문거리를 생각해 냈다.
요새 미국 등 세계각지에서 다양성이나 inclusion이 이슈가 된다. 예를 들면 통역이나 ... 등과 같은 농인 복지를 위해 사회가 힘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농인 말고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을 텐데, 그것을[농인 복지를] 우선순위priority로 두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 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하겠는가?
(뭔가 말이 redundant해 보이지만 정말로 질문이 how would you respond to ... 로 시작했다.)
솔직히 별로 생각을 많이 못 해봤기 때문에 갈피를 못 잡고 횡설수설했다.
예산에 한계가 있으므로 누구를 우선으로 도울지 잘 고려해야 한다고 운을 떼 놓고선,
"TV에서 뉴스 볼 때 아래에 수어통역사가 나오는 데 대해서 청인들이 불평하던 게 요새는 모니터가 커져서 해결되고 있다. 이것처럼 기술이 발전되면 해결되는 게 있다."라는 식으로... 맥락에도 맞지 않고 그 자체로도 말이 안 되는 희대의 헛소리를 해 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흐름이 너무 엉망인 것 같아서 '근데 이건 아까 내가 언급했던 예산의 한계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너무 lost track한 것 같다.'라는 식으로 말했더니,
시험관 왈 '그래서 그런 우선순위 문제에 뭐라고 답하겠는가?'
당황한 와중에 어떻게든 생각을 쥐어짜서, '나는 타고난 성향상 누군가에게 무슨 힘든 일이 있는 걸 보면 나도 같은 일을 겪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든 자신이나 the ones you care에게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고 blabla...'라는 식으로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말인 거 같고, 농인 복지가 필요한 이유가 정말 저런 건지 모르겠는데 시험관은 나름 만족스러웠는지 'that's a good point'라고 말했다.
다음 질문은 표현이 좀 재미있었다. '농인이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은 어떤 것이겠는가? 당신에게 한 번 휘둘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magic wand가 있다면 농인을 위해 어떤 세상을 만들겠는가?'
대답: '현실에서 이미 그런 세상을 실현하고 있는 곳이 있다. 아마 그 대학의 이름이 갤로뎃(Gallaudet - 철자는 시험이 끝나고 검색해 보고서야 알았다)이었던 것 같다. (시험관이 자기도 안다고 맞장구치면서 here at Washington D.C.에 있다고 말한 거 같다.) 거기는 길에 장애물이 별로 없다고 들었다. 수어를 하면서 걸을 때에 안전하도록.(시험관 맞장구) 그리고 농인은 주로 시각적인 정보를 사용하니까 색깔이 중요하다.(?) 그리고 노크는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거기 건물은 벽이 투명해서 벽 사이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들었는데 (시험관이 그건 자기도 처음 알았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사실 내가 전에 언어학 카톡방에서 봤던 일본 어디 농학교 얘기였던 거 같아서, "그렇게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라고 얼버무렸다.) fabulous하고 fascinating한 거 같다.(이건 그냥 점수에 좋은 단어를 쓰려고 말했다.)'
이것도 그렇게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방한 것 같다.
아마도 개인 맞춤형 질문은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더 생각나는 게 있으면 추후에 수정해서 추가하겠다.)
시험관은 '이제 롤플레이를 하고, 그 다음에 wrap-up 하겠다' 라고 말했다. 오픽을 여러 번 봤으니까 롤플레이는 뭔지 알지? 라는 느낌이었다.
롤플레이는 (뭐든 그렇지만) 당황스러운 주제였다.
그래도 어디 후기에서 본 것처럼 '자동차 렌트'같이 내가 한 마디도 하기 어려운 주제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dry-cleaning을 하는 가게 사장이고 당신은 손님이다. 당신이 맡겼던 clothing을 pick up 했는데 당신이 원했던 대로 처리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전화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하라."
시험관: "Hello, 무슨무슨 빨래 가게입니다." (여기서부터 롤플레이 끝날 때까진 실제로 약간 톤이 바뀐 거 같다. 시험관의 메소드 연기)
나: Hello, this is (내이름). 아까 제 옷을 가져왔는데 제가 clean해 달라고 요청했던 stain(얼룩 - 이 단어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이 옷에 남아 있어요. 혹시 'additional fee' 없이 다시 세탁해 주실 수 있는지... 우물쭈물... (계속 additional fee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시험관: "오 그렇군요, 얼른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주문 번호order number를 알 수 있을까요?"
나: (주문 번호를 갑자기 쌩으로 만들어내는 게 좀 웃겼지만, 왠지 눈앞의 키보드를 보면서) "제 주문번호는 C O 2 3 4 5 입니다"
시험관: "네 __ ___님, 셔츠 두 개와 바지 한 개를 맡기신 게 맞을까요?"
나: that is correct.
시험관: "그런데 주문 내역을 보니 아까 말씀하셨던 stain 얘기는 없고 그냥 general cleaning을 해 달라는 요청만 있네요."
나: (일단 당황함) "oh... that is weird. I remember mentioning... the stain when I ... reserved.... ('예약하다'가 reserve는 아닌 거 같은데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계속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그치만 당신이 general cleaning을 properly 했으면 이 stain도 없어졌을 거 아닌가요?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시험관: (단호) "No, [stain을 없애 달라고 요청할 때랑 general cleaning이랑] procedure도 다르고 세제도 다르고 암튼 다 다릅니다." (아마 다 준비되어 있는 응대인 거 같은데, 어쨌든 나는 많이 당황했다.)
나: 어... 이상하네요... 분명 stain 얘기를 한 거 같은데.... 어...
시험관: 그래서 어떻게 해 드릴까요?
나: 어... stain 얘기 분명 썼는데.... 어...
시험관: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이 짓을 두세 번은 했다. 후...)
나: 그러면 다시 clean 해 주실 수 있나요?
시험관: 네 가능합니다
나: 'additional fee'를 내야 하나요?
시험관: 아니요, 'further charge(였나)' 없이 다시 해 드리겠습니다.
나: 아, 그러면 이 옷을 어떻게 다시 보내면 될까요?
시험관: 그냥 bring it back하시고 .... 하시면 저희가 address the issue 하겠습니다.
나: 알겠습니다. I'll drop by ... this afternoon. 감사합니다.
대략 이런 식으로 롤플레이는 마무리되었다.
롤플레이가 끝나고 시험관이 '실제로 옷을 맡겼다가 이런 이슈를 겪어 본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는데, 그런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아마도 평가의 일부라기보다는 그냥 가볍게 인사 나누고 마무리짓는 단계였던 것 같다.
시험관이 '이 시험 끝나고는 어떤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뭐 서류 낼 게 있어서 그거 address하러 갈 거다'라고 대답했다. (address를 저렇게 쓰는 용법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아까 시험관이 그렇게 말하길래 따라해 봤다.)
시험관이 즐거운 대화였다, 앞으로의 proficiency test에도 행운을 빈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도 땡큐베리머치로 작별을 고했다.
전화가 끊어지지 않아서 'am I supposed to just leave now?'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am I'까지 말했을 때 전화가 끊겼다.
끝나고 보니 32분 40초? 정도가 지나 있었다. 옆방에서는 OPIc 시험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감독관이 시험이 끝나면 그냥 가면 된다고 했으니 그냥 가도 되려나 하고 물건을 챙겨서 독방을 나서니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앞으로 OPIc 말고 OPI에 응시하는 건 베트남어는 좀 무리가 아닐까 싶고, 일본어는 가능할 거 같다. 오히려 일본어 OPI를 보는 게 영어보다 성적이 잘 나올지도 모르겠다. 롤플레이는 그래도 영어가 나은가...
중국어 러시아어는 OPI는커녕 OPIc도 간당간당하다.
+
위에 적지 못한 악재(?)가 더 있었는데, 화상 전화가 아니라 음성 전화라서 상대방 얼굴이 안 보이니까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건지, 내가 정확한 표현을 쓰고 있는 건지 모르는 채로 말하는 게 좀 자신감을 깎아먹었고, 게다가 시험관이 감기에 걸렸는지 내가 말하는 도중에 자꾸 전화기를 막고 기침을 해서 내 말을 전부 집중해서 듣고 있는 건지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
일을 시작하고서 사실상 처음으로 사용한 휴가였는데, 오전에 시험을 보러 다녀오고 오후에 후기를 쓰니까 순식간에 날아갔다.
+++
말을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ejective k를 사용했다. 특히 뒷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망설일 때 나왔던 것 같다.
아래 유튜브 영상을 보고서 '영어에 이런 발음이 있다니 전혀 몰랐다' 하면서 굉장히 신기해 했었는데, 오늘 내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는 걸 발견했다.
방출음 k를 (숨을 참을 수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조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아주 기괴하고 웃기다. (3:08부터)
+ 결과는 AM(Advanced Mid)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