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사용기반 언어학 관련 자료 소개
3. 다른 반-촘스키 언어학과의 관계 (기능주의, 인지언어학)
만약 글이 거칠어서 잘 읽히지 않거나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지적해 주시려거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제 잘못으로 잘못된 정보가 실린 것에 대해 가르침을 주실 분 또한 거리낌 없이 지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 밖의 의견도, 제 기분은 개의치 마시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1. 서론
Usage-Based Linguistics의 정의를 내가 이해하는 대로 내려 보자면:
'화청자들의 언어 사용이 언어 체계에 지속적인 피드백~압력으로 늘상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언어학 사조'
처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약간 순한맛 버전이다.)
이 사조에 속하는 연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는 '빈도(frequency)', '강화(entrenchment)', '잉여적 표상(redundant representation)', '네트워크(network)' 등이 있다. + '문법과 어휘의 연속성~동질성' 같은 것도 있다.
사용기반 언어학의 이러한 태도는 촘스키 언어학을 포함한 주류 생성문법 사조에서 언어 사용(혹은 수행performance)을 언어 능력(competence)과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편 반-촘스키 진영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용기반 언어학 사조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하스펠마트Haspelmath가 대표적이다. 후술)
실제로 사용기반적인 태도를 취하는 언어학자들이 Usage-Based Linguistics의 신념을 정의한 것으로 이런 내용이 있다.
Language structure is shaped by language use.
언어 구조는 언어 사용에 의해 형성된다.
(Traugott and Trousdale(2013)의 Constructionalization and Constructional Changes 3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고,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입장이 Barlow and Kemmer 2000, Bybee 2010 등에 드러난다고 한다. 전자는 어떤 자료인지 당장은 모르겠으나 후자는 Language, Usage and Cognition인 듯.)
요컨대 문법이 먼저 있고 거기에 기반하여 언어가 사용된다기보다, 언어의 사용이 먼저 있고 사용자들이 거기에 기반하여 실시간으로 문법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아마 논리적으로 전자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테고, 전자'만' 강조하는 태도에 대한 안티테제 정도인 듯하다. 즉 문법의 역동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
2. 문헌 소개
이러한 신념이 구축되어 온 순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이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연구에서였다:
Bybee (1985), Morphology: A Study of the Relation Between Meaning and Form
아마도 사용기반 언어학 및 그와 인접한 개념(문법화 등)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읽게 되는 책인 것 같다. (당위는 아니고 현상)
사용 기반 언어학이 하나의 사조로 자리잡기 전에 나온 연구라서 그런지, 사용 기반 언어학 연구에서 자주 인용됨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 책에서는 사용 기반(usage-based)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는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지만 지면의 한계상 그 중에 하나만 꼽으라면 우선 '빈도'가 있다. 여러 언어의 형태론 현상을 보면 어휘소(lexeme) 단위이든 어형(word-form) 단위이든 고빈도로 사용되는 것에서 독립적인 특징이 유지되고 저빈도로 사용되는 것은 사라지거나 평준화(levelling)를 거친다는 것이다. 즉 '빈도'라는 사용 차원의 요소가 어휘부의 '체계'라는 구조 차원의 요소에 압력으로 작용하여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 현상이 빈도라는 변수 하나로 모두 설명될 리도 없고 Bybee도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용기반 언어학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개념으로서 빈도를 대표 격으로 소개해 보았다. 사실은 빈도에 관한 부분 말고도 이 책 전체가 사용기반 언어학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트워크, 어휘 표상의 강도lexical strength 등)
사용 기반 언어학은 Bybee(1985)의 Morphology 책이 소개하는 어휘~형태 단계의 통찰을 문법~구문 단계까지 가져온 셈이다.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고 유행어가 생겼다 사라지는 등 어휘부(lexicon)의 역동성은 직관적이지만, 문법에 대해서는 정적이라는 이미지가 대표적이고 실제로 어휘에 비해서 문법은 정적인 것이 사실인데, 어쨌든 체계가 구축되고 변화하는 방식은 어휘이든 문법이든 Bybee가 이 책에서 관찰하고 기술한 바와 같다는 것이 사용 기반 언어학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더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어휘와 문법이 서로 이산적이기보다 연속적인 관계에 있다는 구문 문법(Construction Grammar, CxG)의 주장과 연결된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구문 문법(들)이 모두 사용기반 언어학의 정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 내가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용 기반 언어학 연구로는
- 위에 소개한 Traugott and Trousdale(2013)을 비롯해서
- Croft(2001)의 Radical Construction Grammar
- Bybee(2010)의 Language, Usage and Cognition
- Tomasello(2003)의 Constructing a Language: A Usage-Based Theory of Language Acquisition 등이 있다.
- 유튜브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Martin Hilpert는 스스로도 Bybee의 팬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용기반 언어학의 열성적인 지지자인 듯하다. Hilpert의 유튜브 채널에 가면 그런 모습을 드러내는 영상을 많이 볼 수 있고, 2013년에 낸 연구 Constructional Change in English 등에서도 그러한 정신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제대로 읽어 보지는 못했다.)
3. 사용기반 언어학과 다른 반-촘스키(Anti-Chomskyan) 언어학 사조의 관계 - 인지언어학과 기능주의, 구문문법과 문법화
(이하 내용에서 언어학자들에 대한 분류도 네이밍도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면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혹시 잘 아시는 분들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문제되는 점을 따끔하게 지적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반-촘스키 언어학 진영을 크게 인지언어학(Cognitive Linguistics)과 기능주의(Functionalism)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모어(Fillmore), 레이코프(Lakoff) 등이 전자이고, 하스펠마트(Haspelmath) 등이 후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용 기반 언어학을 따르는 언어학자들은 아마 인지언어학과 기능주의가 양 극단을 이루는 스펙트럼의 중간 어디께에 위치하는 것 같다. (Bybee, Hilpert, Croft 등을 자타가 인지언어학자, 기능주의자 등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그건 일종의 가족 닮음에 의한 네이밍이고 실체에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 먼저 필모어나 레이코프 등 인지언어학자들과 사용 기반 언어학자들은 구문 문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그러나 구문이 모인 네트워크의 구조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사람의 머릿속에 어휘가 모여 있는 어휘 사전으로 어휘부(lexicon)가 있듯이, 어휘와 문법을 비슷하게 생각하는 구문 문법에서는 구문이 모여 있는 구문 사전으로 구문부(construct-i-con)라는 것을 상정한다. 구문 문법을 추구하는 것은 같지만, 이 구문부의 구조에 대해 필모어 등 인지언어학자들과 바이비 등 사용 기반 언어학자들은 입장차를 보인다. (지금은 어느 쪽으로든 수렴했을지 모르겠다.)
구문부를 나타낼 때 보통 [NP VP]('NP가 VP하다')처럼 추상적인 구문일수록 위에, [John VP]('John이 VP하다')처럼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구문일수록 아래에 나타낸다. 이때 [John VP]라는 구체적인 구문은 [NP VP]라는 추상적인 구문으로부터 그 특징(feature, 자질)을 상속(inherit)한다고 한다. 즉 [NP VP]가 갖는 모든 특징을 [John VP]도 갖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특징이 내려가는 것이니 상속이라는 용어를 쓴다.
상속이 일어나는 상황에 관련하여 필모어는, [John VP]와 같은 구체적인 구문의 특징 중 [NP VP]와 같은 추상적인 구문의 특징과 완전히 같은 것, 즉 상속되는 특징은 [John VP]와 같은 구문에 다시 따로 표상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즉 잉여적 표상(redundant representation)이 불가능 내지 불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촘스키 언어학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이론의 세련됨(elegance)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이비 등 사용기반 언어학자들은 [John VP]와 같은 구체적인 구문의 특징이 [NP VP]와 같은 추상적인 구문의 특징과 완전히 겹치더라도 상황에 따라 [John VP]라는 항목에 다시 따로 표상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그에 대해 자세히 논하기는 어렵지만, 위에서 언급한 Bybee(1985)의 주장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여담으로, 지금은 외대 총장이 되신 박정운 교수님이 2020년 1학기에 대학원 영어학과에서 구문문법 수업을 진행하셔서 그 수업을 청강했었는데, 당시 수업에서도 Goldberg나 Bybee 등은 잉여적 표상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 Fillmore는 불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는 언급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편, 구문 문법이라는 게 인지언어학자들과 사용기반 언어학자들의 공통분모라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화용적으로 추론 가능하듯이, 하스펠마트 등 기능주의자들은 구문 문법이라는 주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스펠마트는 2021년에 We are all constructionists라는 글을 썼는데,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구문문법의 핵심 주장은 '어휘와 문법이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 언어를 설명할 수 없고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모든 언어학자들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문제이다. 구문문법은 이를 마치 자기들만 알고 있는 심대한 문제인 것처럼 하여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실은 굳이 무슨 문제가 더 남은 것처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인지언어학과 사용 기반 언어학에서 공유하고 기능주의 언어학에서는 배제하는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신념으로 '정신적/심리적 실체에 대한 추구'가 있다. 인지언어학과 사용 기반 언어학은 (그리고 생성문법 또한!) 언어사용자의 머릿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정신적 실체(mental reality)로서의 언어 체계를 기술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반면, 기능주의 언어학에서는 반드시 그러한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는다. 하스펠마트의 아래 논문에서 그런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개개인의 정신 상태는 시간적으로도 너무나 동적이고 개인마다의 변이도 심하기 때문에, 정신적 실체로서의 문법을 추구해서는 언어학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
+ Haspelmath (2008), Framework-free Grammatical Theory https://www.eva.mpg.de/fileadmin/content_files/staff/haspelmt/pdf/Frameworkfree.pdf
내가 이해하기로 정신적 실체 추구라는 목표는 촘스키 언어학이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 반하여 새로이 설정한 목표인 것 같은데, 정확히 같지는 않더라도 그런 차원에서 촘스키 이전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것 같다. 하스펠마트가 2020년 5월에 쓴 글 We are all structuralists에서도 관련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다.
다음으로 Bybee 등 사용 기반 언어학자들과 Haspelmath 등 기능주의 언어학자들이 공유하는 신념 또는 관심사로서 문법화(grammaticalization)가 있다. 흐름상 추론 가능하겠지만 필모어, 레이코프 등의 인지언어학자들은 문법화 등 통시적인 주제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명시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자료를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접한 필모어나 레이코프의 연구에서는 그런 주제에 대해 강조하는 걸 거의 못 본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아서 사용 기반 언어학자들과 기능주의자들이 문법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입장들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정신적인 실체에 대한 추구 여부'에서 그 차이점이 가장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문법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어휘나 구문의 동의 관계(synonymy)와 동음이의 관계(homophony)를 구분하는 척도로 사용 기반 언어학자들이라면 정신적, 의미적인 것을 들겠지만, Haspelmath 등은 좀더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보수적으로 나오거나 synonymy vs. homophony의 구분 자체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또 Haspelmath 등은 빈도와 같은 언어사용의 요소가 문법 변화에 미치는 영향과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나 그것을 개인의 차원에서보다는 사회의 차원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 밖에...
- 언젠가 Academia에서 Usage is usage, grammar is grammar 같은 투의 논문 추천이 있었는데 그 취지가 기능주의적인 건지 형식주의적인 건지 몰라도 궁금한 제목이었다.
- 어쨌든 하스펠마트가 이야기하는 기능주의도 정신적 실체를 추구하는 '사용 기반 언어학(Usage-Based)'은 아닐지언정 사용에 기반하는 접근(usage-based)이다.
아래 링크에서 하스펠마트가 기능주의 언어학에 대해 소개하는 자료를 볼 수 있다. 위에서 인지언어학~사용 기반 언어학~기능주의를 두고 일종의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 연쇄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익숙한 이름들도 많이 보인다.
- 위에서 인지언어학(Cognitive Linguistics)을 기능주의와 평행하게 '인지주의(Cognitivism)'처럼 부르지 않은 건, 그 이름이 아마 다른 분야에서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인지언어학을 생성문법과 평행하게 부르려는 시도로 '인지문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있는 것 같은데, Cognitive Grammar는 래내커(Langacker)가 먼저 자신의 문법 이론에 붙인 이름인 걸로 알고 있다. 이 이론은 Cognitive Linguistics와 같은 것이 아니라 Cognitive Linguistics의 가족닮음 연쇄에 소속되는 멤버 같은 것이므로, 인지언어학을 일컫는 이름으로 '인지문법'은 약간 부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 다른 문단에 비해서 문법화 문단이 좀 부실한 것 같지만... 더 이상 임시저장은 싫고 잠을 자고 싶다
다음 번에 기회가 되면 문법화와 synonymy와 homophony에 대해서 뭐든 써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제 부족하고 부정확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고 고칠 수 있도록 거침없는 지적을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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