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인지언어학 수업을 수강할 때였다.
내가 인지언어학 수업을 수강하던 학기는 코로나19로 인해 개강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실시된 첫 학기였다. 덕분에 교수님도 수강생들도 이 비대면 학교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중간에 대면 강의로 전환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으나, 2024년 지금의 입장에서 돌아보니 내게는 결과적으로 장점도 있었다.
'아싸' 성향이 강한 내게 기본적으로 비대면 환경이 마음 편한 것도 있었지만, 그 외의 장점 중 하나는 교수님의 말을 거의 받아쓰기하듯이 필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면 수업을 들을 때도 나는 가끔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무리가 갈 정도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필기하려고 했었는데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나중에 다시 들춰보는 일은 드물었지만), 집에서 혼자 컴퓨터로 수업을 들으니 그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많은 정보를 받아적을 수 있었다. 키보드 소음이 엄청났지만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나는 아주 편한 마음으로 교수님의 농담과 말실수까지 열심히 받아적었다.
그렇게 해 두고 나니,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마음만 먹으면 당시의 수업 내용을 꽤 많이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잘못 받아적은 내용도 있겠고 엉뚱하게 paraphrasing한 내용도 있을 테니, 이 블로그에서 대학 때 들은 수업을 인용하여 작성하는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그건 온전히 내 책임이다.)
4년 전 내가 수강했던 인지언어학 수업의 제6주차 강의는 '틀 의미론(Frame semantics)'에 관한 것이었다.
요즘은 일상적인 어휘로도 흔하게 쓰이는 '프레임'이라는 것이 본래는 무슨 의미였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도입부에서 상당히 의아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목차
1.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가설)은 좋은 이론(가설)이 아니다"?
2. 포퍼(Karl Popper)와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3. '모든 현상'에 대한 오해, '반증가능성'과 '진리성(참/거짓)'에 대한 혼동 -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에 담긴 오해
4. 보편성과 경향성
1.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가설)은 좋은 이론(가설)이 아니다"?
내가 편의상 '음슴체'로 받아적긴 했지만, 당시의 교수님 말씀을 상상하여 복원해 보자면 아마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어떤 이론이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사실 딱히 '설명'이 아니에요. 이것도 frame이고, 저것도 frame이고, 이렇게 모든 것에 대해서 frame이라고 말해서는 별로 설명되는 게 없어요."[1][2]
그 뒤로 교수님은 frame이란 게 무엇인지 차차 설명해 나가셨는데, [3]
그 내용과 상관없이 내게는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어째서 좋은 이론이 아니지?'라는 의아함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았다.
사실 나는 그 전에도 다른 교수님의 '문법화'(청강) 등 인지언어학에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저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때로 수강생이 '이러이러한 현상은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에서 제시하는 어떤 일반화)]와는 반대되는 것 아닌가요?'라는, 일종의 반례 제시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교수님들은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시고는 했다.[4]
(가상의 예를 들자면, 문법화 수업에서 '역문법화degrammaticalization'와 같이 '문법화의 일방향성'에 배치되는 사례를 수강생이 제시했을 때, 교수님께서 위와 같이 대답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나는 그럴 때마다 비슷한 의문을 떠올렸다. 왜냐하면 우선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수업 내용 자체부터가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수록 더 좋은 이론'이라는 (상당히 직관적인) 진술을 꽤 자주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접했던 인지언어학 연구 논문이나 그런 연구를 소개하는 교수님 말씀에는 늘 '생성문법'이라든가 '형식의미론'같은 '대립 이론'보다 더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더 나은 '설명력'을 통한 우위를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략 '생성문법, 형식의미론 너희들은 이런 현상 설명 못 하지? 인지언어학은 해낸다. 그러니까 인지언어학이 더 좋은 이론이다!'와 같은 식이었다.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수록 더 좋은 이론. 그 방향으로 끝까지 가면 결국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최고의 이론'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문법화나 인지언어학의 특정 개념이 적용되기 어려워 보이는 현상(반례)을 제시하는 데에는 어째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해 주시는 걸까?
이러한 의문은 수업의 주된 주제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교수님들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째서 좋은 이론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꺼내지는 못했다. 교수님들이 워낙 당연한 말을 하는 듯한 말투를 쓰시기도 했고 다른 수강생들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니 그런 질문을 했으면 좀 바보같아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땐 몰랐지만, 아마 정말 질문했다면 교수님들은 '(과학)철학을 공부해 보라'고 대답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내가 갖고 있었던 의문은 상술한 것과 같은 정도의 막연한 것이었지만, 과학철학에 대해 이것저것 읽다 보니 실제로 자연과학에서 '원래는 무관해 보였던 현상들을 하나의 통일된 원리 안에 묶어서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위대한 과학적 성취로 여겨지는 사례들을 여럿 마주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뉴턴 이전까지 천체의 움직임과 지구상의 움직임은 서로 다른 원리를 따르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뉴턴이 천체의 움직임이든 지구상의 움직임이든 움직임에는 똑같은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이론을 내놓음으로써 하나의 원리로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별달리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위대한 과학적 진보인 것이다.
더욱 혼란스럽다. 그래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대관절 좋은 이론인가, 안 좋은 이론인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할 단서는 대학을 졸업한 뒤 과학철학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2. 포퍼(Karl Popper)와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1963년에 그의 저서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을 서로 대조하였다.
포퍼가 보기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과학이었던 반면,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이론은 (비록, 포퍼가 보기에, 마냥 틀린 것도 아니고 상당히 의미 있고 중요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과학이 아니었다.
상대성 이론은 왜 프로이트, 아들러의 이론과는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게 되었을까?
포퍼가 생각하는 차이점(즉 과학의 자격)은 바로 이것이었다.
상대성 이론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관찰 결과 중 적어도 어떤 것과는 양립할 수 없다. (incompatible with certain possible results of observation)
다른 말로 하자면,
상대성 이론을 틀린 것으로 만들 만한 관찰 결과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일이 가능(conceivable)하다.
여기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포퍼를 매료시킨 상대성 이론은 '빛은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라는 '위험한 예측'을 제시했다. 이 예측이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만약 우리가 실제로 빛을 관찰했을 때 빛이 중력의 영향을 따라 휘어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관찰 결과에 의해 상대성 이론의 예측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관찰 결과가 나온다면, 상대성 이론은 곧장 폐기되거나 대거 수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관찰한 결과 빛은 중력에 따라 휘어졌다. 우리가 관찰 이전에 상상했던, 상대성이론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 관찰 결과는 천만다행히도 실제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포퍼가 보기에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이론에 대해서는 이러한 '관찰에 의한 반증'이 불가능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빛을 관찰해 보니 중력의 영향을 따라 휘어지지 않더라'라는 상상이 상대성 이론에게 부여했던 위협이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이론에는 전혀 없었다.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이론을 폐기할 수 있을 만한 관찰 결과를 상상하여 그 이론을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포퍼가 어떠한 현상을 가져다 제시하든지 간에, 그들은 자기 이론을 가지고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퍼는 이렇게 말했다.
(의역, 오역 주의) '... 아이를 밀쳐서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는 사람과, 그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의 행동은 서로 매우 다른데도,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이론은 각각의 행동을 전혀 어려움 없이 설명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첫 번째 사람은 (이를테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어떤 구성 요소에 의한) 억압(repression)에 시달리는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승화(sublimation)를 달성한 사람이다. 아들러에 의하면 첫 번째 사람은 열등감에 시달려, 이를테면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지를 만큼 대범하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를 느낀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은 열등감에 시달려 자신이 아이를 구해낼 만큼 대범하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5]
"나는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이론으로 해석할 수 없을 법한 인간 행동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I could not think of any human behaviour which could not be interpreted in terms of either theory."
포퍼가 생각하는 비과학의 이러한 특징을 다른 말로 반증불가능성(unfalsifiability)이라고 한다.[6]
3. '모든 현상'에 대한 오해, '반증가능성'과 '진리성(참/거짓)'에 대한 혼동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교수님들께서 하신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추측하건대 교수님들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하신 건 포퍼가 비과학적이라 규정했던 프로이트나 아들러 심리학과 같은 이론을 염두에 두신 것이었을 테다.
"어떤 이론이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사실 딱히 '설명'이 아니에요. 이것도 frame이고, 저것도 frame이고, 이렇게 모든 것에 대해서 frame이라고 말해서는 별로 설명되는 게 없어요."
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틀 의미론(frame semantics)이라는 개념을 제한 없이 아무데나 막 적용하다가는 포퍼가 지적했던 것처럼 반증불가능한 주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취지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쉬이 수긍할 수 있다. "이것도 frame이고, 저것도 frame이고, 이렇게 모든 것에 대해서 frame이라고 말해서는 별로 설명되는 게 없어요."라는 말씀에 대해 나도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수강생이 '이러이러한 현상은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에서 제시하는 어떤 일반화]와는 반대되는 것 아닌가요?'처럼, 일종의 반례 제시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교수님들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떨까?
내 의견을 조심스레 말해 보자면, 이것은 그다지 적절한 대답이 아니었다고 본다.
교수님들의 저러한 대답에는 '모든 현상'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와 함께, '반증가능성(과학성)'과 '진리성(참/거짓)'에 대한 혼동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법화나 인지언어학의 어떤 예측에 대한 '반례'를 두고 교수님들이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잘못) 대답하신 이유는 바로,
(1) 이 말에서의 '모든 현상'을 '실제로 관찰되는 모든 현상'으로 오해하신 동시에,
(2) '반증가능한(과학적인) 이론은 언제나 참인 이론'이라고 오해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글로써 밝히고자 하는 나의 생각이다.
우선 (1)의 '모든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나는 '모든 현상'이라는 말을 아래와 같이 적어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이해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i.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모든 현상
ii.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까지 포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상
-> i를 설명하는 것은 반증불가능한 이론이 아니라 그냥 좋은 과학 이론, ii를 설명하는 것은 반증불가능한 이론
이 중 i. 실제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최고의 과학 이론일 것이다.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에서의 '모든 현상'이란, 결코 '실제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이라는 뜻이 못 된다.
포퍼가 비판하고자 했던, 이론을 반증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현상에 대한 설명'이란 바로 ii.와 같이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까지 포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이라고 이해해야 타당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를테면 '진공 상태에서 깃털과 쇠공을 떨어뜨렸더니 쇠공이 먼저 떨어지더라'[7]와 같이 과학자에게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을 (그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가장하고) 가져다 주면, 그는 그 현상을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곧장 우리를 의심하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라고 대답하거나, 만약 우리가 그를 너무나 잘 속인 나머지 과학자가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는다면, 지금의 과학 이론을 폐기하거나 수정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반면 포퍼가 말하는 것과 같은 유사과학자에게 그러한 모순 현상을 가져다 준다면? 우리가 실제와 모순되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가장하여 그를 속이고 있다는 점만 들키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별다른 위기감 없이, 자기 이론을 가지고 어떻게든 그 현상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포퍼가 지적하는 반증불가능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좋은 이론이 못 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반증불가능한' 이론이기 때문이고, 어떤 이론이 반증불가능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위에서 말한 ii.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까지 포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설명해 내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에서의 '모든 이론'이란 곧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까지 포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수강생이 '이러이러한 현상은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에서 제시하는 어떤 일반화]와는 반대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례를 제시할 때 '이러이러한 현상'은 i.에 속하는 '실제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보편적 설명을 목표로 하는 과학 이론이라면 무시할 것이 아니라 응당 설명을 목표로 해야 할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저러한 질문에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실제로 수강생이 제시한 현상이 해당 개념의 설명력을 벗어나는 현상이라면, 여기에 대해 적절한 대답은 오직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이 제시하는 진술은, 자연과학과 같은 보편성(universal)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경향성(tendency)에 대한 것이다'뿐이라고 본다. 그리고 독자는 부디 오해하지 마시기를, 나는 언어학의 설명이 보편성 대신 경향성을 추구하는 것은 극히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며 오히려 억지로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라고 믿는다. (4절 참조)
(2) 반증가능한(과학적인) 가설(이론)이라고 해서 늘 참인 것은 아니다. 반증가능한 이론 중에 실제로 반증되어 거짓으로 밝혀진 이론이 오히려 훨씬 많다.
그리고, 거짓인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
수강생이 '이러이러한 현상은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에서 제시하는 어떤 일반화]와는 반대되는 것 아닌가요?'처럼, 일종의 반례 제시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교수님들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좋은 대답이 못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반증가능성'이 '참'을 뜻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요컨대 반증가능하든 아니든, 실제로 반례가 확인되어서 거짓으로 드러난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성을 포기하고 경향성을 추구하면 소수의 '반례'야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 과학의 기준으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은 좋은 과학 이론인가? 누구나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천동설은 반증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어떨까? 이것은 완전히 다른 질문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천동설은 분명히 반증가능하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관찰하기만 하면 천동설은 곧장 반증된다. 실제로 반증되었다는 점에서도 천동설의 반증가능성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천동설이 좋지 못한 이론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동설이 거짓인 이론(또는 틀린 가설)이기 때문이다.
만약 위 상황에서 교수님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신 목적이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의 이미지를 포퍼가 지적하는 것과 같은 반증불가능한 유사과학의 수준으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즉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이 반증가능한 이론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이것이 헛된 시도라고 말하겠다. 왜냐면 마치 천동설과 같이, 반증가능한 이론이 되어 봤자 거짓인 이론이어서는 여전히 좋은 이론이 못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위와 같은 대답은 (1)에서 이야기했듯 해당 이론의 반증가능성조차 지켜 주지 못한다.)
수강생이 '이러이러한 현상은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에서 제시하는 어떤 일반화]와는 반대되는 것 아닌가요?'를 통해 제시한 '이러이러한 현상'은 (1)에서 말했듯이 실제로 관찰되는 현상이고 따라서 설령 문제의 이론이 반증가능한 이론이라 해도, 이러한 현상은 (이론이 보편성을 추구한다면) 충분히 해당 이론을 반증(falsify)하는 반례가 된다.
마찬가지로 (1)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반례에 대해 유일하게 좋은 대답은 '인지언어학/문법화 이론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언어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경향성에 대한 기술이다'이다.
4. 보편성과 경향성
언어학도는 '언어학은 과학(적 학문)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러한 말로부터 '언어학은 자연과학과 같은 보편성을 추구해야 마땅하다'라는 해석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언어는 사회 현상이다. 사회 현상에는 어떤 원리를 들이대든 늘 예외가 발견된다. 예외가 전혀 없는 100% 보편적인 이론을 추구하는 사회과학 이론은 없을 것이다.
일부 언어학 사조처럼 사람 머릿속의 실제적인 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야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 자연과학과 같은 보편 진술을 이끌어내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어 보인다. 7,000여개에 달하는 세계 언어 사이에서 완전한 보편성을 찾는 일이 여태껏 실패해 왔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n명의 사람이 있다면 n개의 문법이 있다'라는 말처럼, 같은 'XX어 화자'라 해도 개인마다 각각 다른 수용성이나 문법성에 대한 직관, 말을 사용하는 습관 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n명 n문법론의 원 출처를 잘은 모르겠다.)
언어유형론, 기능주의 언어학 등의 접근이 그러하듯이,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의 접근 또한 분명 보편성이 아니라 경향성을 추구하는 접근일 것이다.
실제로 권익수 교수님의 인지언어학 수업에서도 이러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언어에는,] [보편적] rule은 없고 경향성/tendency/generalization만 있다고 인지언어학에서는 생각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래와 같은 '모든 현상'의 구분 중에서 인지언어학이 추구하는 바를 찾자면,
i.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모든 현상
ii.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까지 포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상
당연히 ii.를 다 설명하고자 하는 반증불가능하고 유사과학적인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i.를 전부 예외 없이 설명하고자 하는 자연과학과 같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지언어학이나 문법화 이론에 대해 수강생이 반례를 찾아 제시했을 때 교수님이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느 쪽으로 보나 그다지 옳거나 유용하거나 의미 있는 대답이 못 된다고 본다. '모든 현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i.이라면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최상의 과학 이론이 되고, ii.라면 인지언어학/문법화 이론의 반증가능성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나 눈 앞의 반례를 반례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인지언어학은 인간의 언어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경향성을 포착하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알려주면 되는 일일 것이다. (물론 논증이 너무 지저분해지지 않는 선에서, '반례'에 관해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봤더니 설명이 가능해지더라, 그래서 정말로는 반례가 아니더라, 하는 대답도 가능하다면 괜찮을 것이다.)
이상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좋은 이론이 아니다'에 담긴 오해를 풀어 보았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실제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좋은 과학 이론 - 상대성 이론 및 양자역학의 현 지위? (관찰된 반례 0, 또는 [관찰되는 반례 0]을 추구함, 논리적으로 가능한 잠재적 반례 존재함)
- 실제로 관찰되는 현상 중 상당수를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은 아니나 여전히 좋은 이론 - 사회과학의 다양한 이론, 인지언어학, 문법화, 기능주의 언어학과 언어유형론의 다양한 설명 (소수의 '반례', but still OK)
- 서로 모순되는 현상을 똑같은 원리로 설명하는 이론 - 포퍼가 비판한 유사과학적 태도 (적어도 그들의 믿음에 따르면, 관찰된 반례도 없거니와 앞으로 영원히 반례가 있을 수 없음. 논리적으로 상상 가능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므로 잠재적 반례조차 없음)
즉, '실제로 관찰되는'의 범위를 넘어 '상상 가능한'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 포퍼 시대의 정신분석이나 개인심리학
[1] 교수님이 내 필기에서처럼 '-거리다'를 쓰시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편 '-거리다'는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접미사'이지만, 필기의 '모든 것에 대해서 frame거리다'에서 보이는 생산성이나 작용역을 생각하면 '접미사'라기에는 의문스럽다. '-투성이'에 대해서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2] 실은 이 말씀이 정확히 6주차 frame semantics에 대한 수업 도입부에 등장했다는 기억은 전혀 없었고, 수업 필기 모음 폴더에서 '모든'이나 '설명'으로 검색해서 찾아냈다.
[3] 궁금하신 분들은 Fillmore의 논문을 읽어 보시거나, 외대 재학중이시라면 권익수 교수님 수업을 들어 보시길. 교수님께서 매우 성실하시고, 강의도 재미있고 유익하다.
[4] 나는 이러한 상황을 두어 번 분명히 목격하였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과 어떤 현상에 대한 질문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기억이 다소 흐릿하지만, 내가 직접 질문한 적도 있었던 것 같고, 다른 사람이 질문하는 것을 곁에서 본 적도 있다.
[5] 옮겨적다 보니 처음 읽었을 때하고는 감상이 좀 달라진다. 처음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지금은 (포퍼의 주된 논지에는 동의하나) 포퍼가 예를 좀 잘못 든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블로그 글의 핵심 논지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말을 둘로 구분하여, '실제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최고의 과학 이론이고, 나머지 하나, 즉 '실제로 관찰되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까지 포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좋지 못한 이론이라고 이해하자"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아이를 물에 빠뜨리는 행동이든 자신이 희생하여 아이를 구해내는 행동이든 실제로 (빈번히?) 관찰되는 인간 행동이므로, 그 둘을 같은 이론으로 설명하는 일이 딱히 비과학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포퍼가 이러한 예를 든 이유는 언뜻 두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러한 표면적 '모순'은 '빛이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휘어지지 않는다'와 같은 진짜 모순이 못 된다. 빛이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지의 여부는 조건에 무관한 보편적 진술이며 서로 배반 관계에 있지만, 사람이 아이를 물에 빠뜨리는가 구해내는가의 문제는 여러 조건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양립가능한 진술이기 때문이다.
[6] 영어형태론 수업을 들을 때 형태소 분석 과제가 있었는데, 나는 Evans(2009)의 The Myth of Language Universals: Language Diversity and its Importance for Cognitive Science를 텍스트로 해서, Evans가 촘스키의 Universal Grammar를 두고 'unfalsifiable(반증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부분을 가져다 'un-[fals-ifi-able]'의 구조를 분석했다. (링크에는 여러 언어학자의 반론이 포함되어 있다.)
[7] 내가 아는 과학 상식이란 이런 정도라서...ㅋㅋ
+ '현상이 실제로 관찰된다'의 의미에 대해서, 이론적재성이라든가 장하석 교수님의 ebs 강의나 <물은 H2O인가?>에 나오는 '능동적 실재주의(active realism)' 같은 걸 생각하면 아마 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아직 거기까지 통합하여 생각할 깜냥은 못 되는 것 같다.
+ 과학철학자들에게는 '그런 질문은 철학과 가서 해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경험담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장하석 교수님이나 이상욱 교수님의 경험담은 확인했고, 장대익 교수님 저서에서도 얼핏 그런 경험담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127
++ 본문하고 아주 약간 연관이 있는데, '통합'을 '설명'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흥미로워했던 대화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 특히 오류 교정을 환영하고 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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