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 제2외국어 전과목 문제를 풀어 보았다.
결과는 이렇다. (문제를 푼 순서대로 제시. 대략 자신있는 순서로 풀었다.)
- 러시아어 17분 4초 43점 (2등급)
- 베트남어 11분 20초 48점 (1등급) (베트남어는 처음 풀 때 영상 녹화를 못 해서 같은 답으로 한 번 더 풀었다. 그래서 시간이 다른 언어에 비해 훨씬 덜 걸렸다.)
- 일본어 16분 10초 46점 (1등급) (여기까지 풀고서 잠을 자고 다시 왔다)
- 중국어 15분 48초 49점 (1등급)
- 스페인어 18분 41초 45점 (1등급)
- 독일어 18분 20초 42점 (2등급)
- 프랑스어 18분 51초 39점 (3등급)
- 한문 13분 45초 48점 (1등급)
- 아랍어 11분 23초 11~12점 (8등급) (그냥 번외로 풀었다. 와중에 한 문제 '마킹 실수'...)
아래는 실제 풀이 및 채점 과정 전체를 녹화한 영상이다. (24배속, 9분 정도)
원래 카카오톡 언어학 오픈채팅방 방장님이 해마다 해 보시길래 따라해 본 거였는데,
한번 직접 해 보니까 꽤 재미가 있다. 앞으로도 매년 해 볼까 싶다.
다만 언어학방 방장님은 모든 과목에서 거의 40점 이상 유의미한 점수가 나오는데 나는 아랍어에서 부진이 심하니,
다음에 도전할 때는 아랍어를 좀 공부하고 나서 도전해도 괜찮겠다.
이번에 39점이 나온 프랑스어도 다음에는 40점을 넘기는 걸 목표로 해도 좋겠다.
이 글에서는
- 수능 제2외국어 전과목 풀이에 대한 간단한 소감 및 총평을 나누고,
- 각 언어별 오답정리를 진행한 다음,
- 아랍어를 거의 글자만 띄엄띄엄 아는 채로 풀었는데 자랑스럽게도 무려 '12점 8등급'을 확보한 노하우를 공유해 보겠다. (ㅋㅋ)
- 간단한 소감 및 총평
전반적으로는 시험이 무지 쉽게 나오는 것 같다.
쉽게 나온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문제에서 묻는 지식을 잘 몰라도 제시문을 잘 보거나 객관식 선지를 꼼꼼하게 살피면 어떻게든 끼워맞춰서 풀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여러 과목에서 관용어(idiom)를 묻는 문제가 하나씩 출제되는데,
해당 관용어 앞뒤로 친절한 대화를 넣어 준다.
이를테면 이런 방식이다.
<보기>
...
A(원어민): C는 피곤해서 눈을 좀 붙이고 왔대.
B(외국어 학습자): 눈을 좀 붙였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A(원어민): 아아, 피로를 풀려고 잠깐 잠을 잘 때 그렇게 말해. C가 피곤해서 잠깐 잠을 자고 왔다는 뜻이야. (훨씬 쉬운 표현으로 설명을 해 줌)
B(외국어 학습자): 아아, 이해했어. 고마워!
<보기>를 보고, '눈을 좀 붙이고 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고르시오.
물론 수험생이 원어민 A의 친절한 설명을 이해할 수 있어야겠다.
실력보다 더 잘 풀 수 있는 유형은 또 있었다.
대화의 빈칸에 들어갈 문장을 순서대로 고르는 문제가 그것이다.
A와 B의 대화를 8줄가량 제시하고 그 중 3개의 문장을 뻥 뚫어 놓는다.
그 밑 <보기>에 문장 a, b, c를 제시한다.
수험생은 a, b, c 각 문장이 위 대화의 빈칸에 들어가는 순서를 고르면 된다.
예컨대
A: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B: ________
A: 무엇을 드시겠어요?
B: ________
이런 식으로 본문이 구성되어 있고,
<보기>
a. 짜장면이요.
b.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c. 두 명입니다.
이러한 보기가 있으면,
위에 나오는 B의 대사 중 a, b, c 문장이 들어갈 자리를 각각 고르는 것이다.
그런데 선지 구성이 꽤 허술해서 <보기>의 세 문장 중 딱 한 문장만 제대로 이해해도 곧장 답이 나오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객관식 시험의 특성상 몇 문제는 아예 찍어서 맞히는 경우가 있다는 걸 고려하면 이 시험에서 1등급과 2등급 사이의 실질적인 실력 차이는 별로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러한 이유로,
나처럼 여러 언어를 수박 겉핥기하듯 '찍먹'하는 사람에게는
'수능 제2외국어 전부 풀기'야말로 실력을 실제보다 부풀려 자랑하기에 제격인 시험이다.
나한테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는 사실 뭐 A1~A2 수준이나 될까말까한 언어인데 각각 1, 2, 3등급이라는 건 매우 후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수능 제2외국어 시험은 전체적으로 외국어 시험치고 아주 쉬운 시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실 내가 러시아어를 아무리 까먹었다지만 2등급을 받을 줄 몰랐고,
(10여 년 전 현역 수능 때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만점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땐 상대평가였는데!)
대학에서 4년 넘게 공부한 베트남어에서 틀리는 문제가 있을 줄 몰랐다.
그리고 수능 일본어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중국어보다 성적이 안 나올 줄은 몰랐다.
실제 내 중국어 실력과 일본어 실력은 위 수능 성적과는 반대 방향으로 비교할 수 없이 큰 차이가 난다.
(일본어도 그다지 유의미하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수능 제2외국어 시험이 특히 몇몇 문제에서 확 변별력을 확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인 듯하다.
25번~30번에 나오는 전치사나 조사(즉 부치사adposition)에 관한 문제, 동사가 요구하는 논항의 구조 문제 등이 굉장히 까다롭다.
많이 잊어버린 러시아어는 그렇다 치고,
일본어 문제 중 조사나 경어법에 관련된 문제는 정말 무지 어려워서,
나로서는 다른 년도 시험을 다시 풀어 본다 해도 이보다 높은 점수는 받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문제에서 만점 레벨과 비-만점 레벨이 나뉘는 것 같다.
아무튼 재미있었고 점수가 잘 나와서 기분이 좋으며 내년에도 여건이 되면 또 해 봐야겠다.
+ 병원에서 의사가 어디가 아파서 오셨냐 묻고 환자가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고 의사가 진찰해 주겠다고 말하는 대화도 매우 여러 과목에서 중복되어 출제된 듯.
- 과목별 오답정리
찍맞도 오답정리했다가는 너무 많아지니 되도록 실제로 틀린 문제만 다뤄 보겠다.
- 러시아어
2. 단어 강세에 따른 아까니예 유무 문제
поездка('여정')는 е에 강세인데... 오랜만에 봤더니 поезд('기차')랑 헷갈리는 바람에 완전 미궁으로 빠졌다.
отдыха(단수 속격), ноги(복수 주격), горы(복수 대격), холодный(남성 단수 주격)는 모두 о에 강세가 있다.
ноги는 단수 속격인 경우 ноги, 복수 주격/대격인 경우 ноги이다.
горы도 단수 속격인 경우 горы, 복수 주격/대격인 경우 горы이다.
(과연 내년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27. 전치사 문제
진짜 어려웠다.
답지를 보고 나니까 'в подарок' ('선물로')은 고등학교 때 배운 기억이 나는데,
'вера в любовь' ('사랑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좀 낯설다. (아마 분명 배우긴 했을 것이다.)
'X에 대한 믿음'이라는 표현은 'вера в 대격'으로 표현하는가 보다.
28. 격변화(복수 속격) 문제
'이 정원에는 X가 조금 있다.'
양을 나타내는 복수 속격(생격)이 나올 자리라는 것은 파악했고,
животных는 확실히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머지는 영 헷갈렸다.
일단 птица('새')의 복수 속격형은 'птиц'가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여기까지는 맞았다.
이제 관건은 b와 c 중 어느 게 옳은 복수 속격형인지를 고르는 거였다.
영 모르겠어서 b로 찍었는데, c가 정답이었다.
당시에는 цветка́ 같은 명사가 있겠거니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게 있었다면 그 녀석의 복수 속격형은 цветок이 되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다.
암튼 사전을 찾아 보니 цветок은 цвет에 지소접미사(diminutive suffix) -о́к이 붙어서 만들어진 남성명사의 단수 주격형이다.
дерево('나무' - 지금 생각하면 문제 풀던 당시에는 뜻도 좀 헷갈렸다. деревня같은 걸 생각한 듯.)의 복수 속격형은 деревьев가 맞다. 왠지 무슨 деревей 이런 거일 줄 알았다.
정리
제대로 된 복수 속격형: животных, птиц, цветов, деревьев
29. 동사 문제
동사에 관한 온갖 사실을 묻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문제였다.
주로 완망상(완료상)/비완망상(불완료상), 그리고 각 동사가 요구하는 격이나 전치사 등 논항 구조(의 통사적 실현법)를 잘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다.
문장 하나마다 고려할 사항이 두 가지씩은 되니 무지하게 피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정확한 해설은 잘 모르고 그냥 뇌피셜로 적어 본다.
1번 문장 Не опаздывайте на встречах!
동사는 의미가 다회적이고 부정 명령이니 비완망상(불완료상)이 제대로 쓰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임에?만남에? 늦지 말라는 건 방향성이 있으니까 처격(전치격) встречах이 아니라 대격 встреч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제외.
2번 문장 Она ездила к бабушке деревни.
다녀온 것이므로 부정태(multidirectional)가 적절히 쓰였고,
한 번 다녀온 것을 나타내는 부정태 과거형의 경우 완망상(완료상)이든 비완망상(불완료상)이든 상관없으므로 ездила는 문제 없다.
사람이 있는 곳, 사람이 사는 곳에 방문했다는 의미로 к+여격을 쓰니까 к бабушке도 패스.
그러나 마지막은 деревни(속격)가 아니라 в деревню(전치사+대격, '시골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3번은 благодарить가 요구하는 격에 대한 문제이다.
Дочь благодарит своим родителям.
(이런 환경에서 아마 ч는 유성음 변이음으로 나타나지 않나)
무지 헷갈리는 부분인데,
전치사 благодаря는 여격을 요구하지만
동사 благодарить는 대격을 요구한다.
그래서 '당신 덕분에'는 благодаря вам인데,
'당신께 감사합니다'는 благодарю вас이다.
이상의 내용은 다행히 고등학교 때 배운 걸 지금까지 잘 기억하고 있다.
위 문장에서 благодарит는 동사이므로 '자기 부모님께'는 복수 대격으로 나타나야 한다.
(своих родителей)
문장에는 복수 여격이 쓰였으므로 틀렸다.
4번 문장 Я всегда сажусь на диван у входа.
정답 문장이고 문제가 없다.
관건은 'сажусь' 즉 садиться('앉다')였는데, 문제를 풀 때는 왠지 이걸 비완망상(불완료상)으로 착각해 버렸다. 그래서 'всегда'하고 안 어울린다고 판단하는 바람에 오답이라고 착각해 버렸다.
머릿속에서 сидеть('앉아 있다')와의 구분하고 좀 꼬였던 것 같다.
'앉다'의 완망-비완망 쌍은 각각 сесть - садиться이다.
'앉아 있다'의 비완망상 형태는 сидеть이고, 완망상은 '잠깐 앉아 있다'일 경우 посидеть인가 보다.
그런데 완망상 과거시제에서는 '앉다'와 '앉아 있다'의 의미 구분이 중화되는 건지, сесть는 сидеть의 완망상이기도 한가 보다.
5번 문장 Не мешайте меня слушать музыку!
내가 답으로 잘못 고른 문장이다.
솔직히 문제 풀 때는 제대로 파악 못 했다.
부정 명령에 비완망상이니 동사는 문제 없다고 생각했고,
방해를 당하는 자, 그러니까 мешать의 보충어가 대격인지 여격인지 살짝 의심은 했던 것 같고, 거기에 대해서 기억이 확실하지 않았는데,
앞에서 'сажусь'를 완망상으로 착각한 탓에 안타깝게도 더 의심해 보지 못하고 그냥 대충 찍어 버렸다.
결론적으로 'не мешайте меня'가 아니라 'не мешайте мне'였어야 했던 모양이다.
- 베트남어
대학에서 4년을 넘게 전공해 놓고 수능 제2외국어 문제를 틀려 버리는 나이롱 전공자의 모습이었다.
Muốn bệnh nhanh ____ thì con phải uống thuốc này.
'병이 빨리 낫고 싶으면 너는 이 약을 먹어야 해'
여기서 '낫다'를 고르면 되는 문제였다.
선지에 나온 동사 5개의 의미가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아서 시간을 좀 들였지만 결국 다 떠올려 냈는데,
sửa('고치다')가 눈에 들어와서 '뭐 대충 자타양용인가 보지~'하면서 3번을 골라 버렸다.
(고치다와 낫다는 뭔가...뭔가 타동사-자동사의 관계니까)
그러나 병이 낫는다는 말은 khỏi 라는 동사로 표현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어렴풋이 배운 기억이 있기는 있는데, khỏi는 đi ra khỏi nhà (집에서 나가다) 같은 문형에서의 존재감이 강해서 그런 걸로만 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일본어
27번은 조사 문제다. 정말 너무 어렵다.
나는 예전에 JLPT N1을 취득했고 OPIc 일본어 시험에서 AL도 두 번 받았으며 JPT에서 900점 넘는 점수도 두 번 받아 보았지만,
솔직히 위와 같은 유형의 문제를 다시 풀어도 맞힐 자신이 없다.
JPT나 JLPT 같은 데 많이 나오는 유형인 것 같은데 이런 게 수능에 나오다니, 정말 이런 거 보면 수능 일본어는 수능 레벨이 아닌 것 같다. 다른 제2외국어 과목들하고는 급이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 상대평가 시절에 일본어를 고른 학생들은 이런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까...
(실제론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문제는 별 게 아닌데 내가 유난 떠는 것일 수도 있다)
정답은 5번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아직도 원리를 잘 모르겠다.
조사 없이 あいだ만 쓰는 것과 조사に를 붙여 あいだに라고 쓰는 것 사이에 무슨 의미 차이가 있는가 보다...
'앞으로 있을 동안'과 '과거에 있던 동안'의 차이인가?? 전혀 모른다.
나머지는 모두 옳은 용법이다.
직접 풀 때는,
コーヒーでいいです는 OK,
答えが分かった도 OK,
(평가원은 이런 거 히라가나로 써 놓고 문제 쉽게 냈다고 생색 낼 생각은 아니겠지... 특정한 어휘는 한자로 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이런 정도는 금방 판단했고,
정답이었던 間に는 솔직히 거의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2번 日本の会社に勤めている가 혹시 日本の会社で勤めている인 건 아닐까 잠깐 의심했는데,
~に住む를 떠올리고 옳은 용법이겠거니 하고 넘어갔고,
3번 '私の方で調べます'는 (실제로는 옳은 용법이지만) 어쩌면 私の方から調べます로 고쳐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답으로 골랐었다.
(아내에게 풀어 보라고 하니 나처럼 3번을 골랐다.)
30번 문제는 사역 표현과 '-해 받다' 표현과 경어 표현과 조건 표현 등 내가 잘 모르는 어려운 포인트가 막 섞인 어려운 문제였다.
일단 (a)手伝わせてもらって가 이상하다는 건 곧바로 판단했다.
させてもらう라는 건 결국 자기가 한다는 뜻인데, 자기가 도왔는데 고마웠다고 인사하는 건 이상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1번과 2번은 지웠다.
(b)手伝えなくて는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겸양의 요소가 없어서 이대로 괜찮은지 확신이 없었다.
답지를 보니 결국 옳은 표현이기는 하다.
(c)(また)何かあると(言ってくださいね)는 결론부터 말하면 틀린 표현이라고 한다.
솔직히 부끄럽지만 제대로 의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何かあれば로 바꿔야 하는 걸까?
이런 걸 모르는 건 마냥 시험이 어려운 탓이라기보다 내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아내에게 풀어 보라고 하니 문제 자체는 본인도 틀리긴 했지만 (c)에는 何かあったら가 어울릴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다. 아내의 설명에 따르면 'と'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류의 조건에 쓰인다고 한다...)
(d)助けてもらってばかり는 우선 助けてもらう 부분이 괜찮은지를 한참 의심하고 곰곰 생각했는데,
결국 괜찮은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는 ばかり 앞에 어떤 형태가 나와야 하는지 헷갈렸다.
문제에 나오는 대로 て형을 쓰는 게 맞나? 혹시 た여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러다가 결국 틀린 선지라고 잘못 체크해 버렸다.
결론적으로 助けてもらってばかり는 옳은 표현이라고 한다.
- 중국어
거듭 말하지만 나의 중국어 실력은 일본어에 비해 훨씬 서투른데도 불구하고,
중국어 문제를 풀 때는 일본어를 풀 때에 비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잠을 자고 피로를 좀 푼 상태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틀린 것 딱 한 문제 말고는 헷갈리는 문제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근데 틀린 문제 27번은 정말 전혀 모르겠(었)다.
不、是、都 세 단어를 적절히 나열해서 '전체가 다 우리 반 학생인 건 아니다'라는 의미를 표현해야 하는 건데, '내가 이런 걸 배운 적이 있었나?'싶은 생각만 들었다.
중국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봤는데 왜 이런 구문은 한 번도 못 접해 본 것 같은지 모르겠다.
정답은 1번이라고 한다.
'전체가 우리 반 (학생)인 건 아니다'라는 말은 '不都是我们班的'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다.
여전히 좀 낯설고 처음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납득은 된다. 영어 어순하고도 거의 같은 듯하다.
문제 풀 때 저 순서도 의심 안 한 건 아닌데 워낙 낯설어서 그냥 자주 접했던 '都不是'로 골랐는데,
그러면서도 이건 '모든 학생이 전부 우리 반 학생이 아니다'라서 답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은 했다.
- 스페인어
여기서부터는 성적이 제대로 나올 거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언어들인데 꽤 선전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상술했듯 수능 자체가 선지 구성을 매우 친절하게 해 주는 덕분인 듯.
매우 헷갈리는 상황에서 반쯤 찍다시피 했는데 정답이었던 문제가 매우 많았다.
이 문제들은 오답은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기는 찝찝하니까 한번씩 훑고 넘어가 보자.
4번 - 뭔가에 새롭다(뉴비다)라는 의미를 verde('녹색이다')로 표현하는가 보다.
뉴비라는 의미를 표현해야 하는 건 맥락상 이해를 했는데 어떤 단어인지 몰랐다.
선지가 거의 다 색채어인 것 같은데 그 중에 뉴비스러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게 초록색 아닐까 싶어서 찍었던 듯.
그러고 보면 '풋내기'라는 우리말 표현하고도 좀 어울린다.
5번 - contar con이라는 표현이 있는가 보다. wiktionary에서는 'to have available'이라는데 솔직히 여전히 잘은 모르겠다.
'축구팀 하나에는 적어도 11명의 available한 선수가 있다'라는 뜻인가 보다. '필요하다'가 들어가야 할 자리인가 추측했었는데 그건 틀린 추측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호르헤 문장에 쓰인 것은 'darse cuenta de'라는 표현으로, '눈치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자기자신에게 보고를 하다'라는 뜻인가 보다.)
7번은 동사 'pagar(지불하다)'를 알아본 것, 'cambio'가 영어로 하면 'change'니까 '거스름돈'이라는 뜻인가 보다, 하는 추측에 성공한 것이 주효했다.
그렇게 해 놓고 보니 'tarjeta'는 모르는 단어지만 '카드'라는 뜻일 거란 추측이 가능했고,
빈칸에 들어갈 말은 '현금으로 (결제하겠다)'여야 하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n efectivo라는 표현은 전혀 모르는 표현이었지만, 나머지 선지가 전부 영 아니었기 때문에 답으로 고를 수 있었다.
오후 4시 10분이라는 시각을 이해했고, 'media hora 안에 떠난다'라는 말까지도 이해했다.
hora가 hour니까 media hora는 30분이겠거니 생각했다.
13번 할머니와 손주의 대화는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으면 __(관용어)___ 배가 아플 거라는 말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과 달리 관용어의 의미에 대해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맥락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분명히'라든가 아니면 '언젠가'가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자가 더 그럴듯했다.
seguida의 생김새가 얼핏 seguro하고 비슷해 보여서 살짝 헷갈렸지만
ciertamente의 생김새가 certain해 보여서 3번으로 골랐다. (옳은 어원, 옳은 선택)
(지금 보니 '할머니'였군... 문제 풀 때는 abuelo로 잘못 보고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
17번 '달마다'를 골라야 한다는 것은 알았는데 어느 전치사가 필요한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냥 찍었는데 al mes가 맞았나 보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스페인어 성적에는 요행이 많이 따른 게 사실인 것 같다.
내년에 다시 풀어 본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듯.
19번 관용어 문제는 뜻 설명이 친절하고 관용어의 생김새가 매우 직관적이라서 어렵지 않았다.
'Muchos pocos hacen un mucho' - 처음 보는 말이지만, 그야말로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니겠는가?
22번은 틀렸는데 사진과 설명을 보고 문화유산을 맞히는 문제였다.
이런 건 따로 공부해서 암기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 별로 욕심이 없다.
'알람브라 궁전'이라는데 이름이 사진의 비주얼과 달리 아랍어스러워서 배제했던 선지가 정답이었다.
28번은 3인칭 대명사의 직접목적격과 간접목적격, 그리고 재귀형을 구분하는 문제...라고 이해를 했다.
los K-dramas가 주어, interesar가 동사고 a mi novia가 목적어.
mi novia가 3인칭 단수니까 1번 me와 4번 los는 곧장 배제.
그리고 주어가 따로 있으니까 5번의 재귀대명사 se는 일단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면서 깨달은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문제를 풀 때 첫 문장의 'A mi novia'를 'A mi novio'로 완전 잘못 읽었다는 것이다.
그 탓에 (다른 사실도 헷갈렸지만) 오답인 2번을 고르고 말았다.
아까 abuela를 abuelo로 잘못 읽은 것도 그렇고 앞으로 스페인어 문제 풀 때 주의해야겠다.
스페인어 대명사에 대해 공부한 지 오래되어 다시 검색해 보니 대명사의 직접목적격은 full NP 목적어가 없을 때만 쓰인다는 모양이다. 반면 간접목적격은 full NP 목적어와 함께 표시될 수 있다.
(https://labibliotecadenuro.tistory.com/28)
문제 풀 때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만약 novia를 novio로 잘못 읽지만 않았어도 2번 lo까지 곧장 제외해서 바로 정답을 3번으로 고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3인칭 단수 간접목적격 대명사가 성 구분 없이 le라는 것은 문제 풀 때도 아마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29번은 4번이 정답이라고 하고 일단 맞히기는 했는데 솔직히 그 이유는 아직 제대로 모른다.
(b)의 'enfadada'는 뜻은 몰라도 mamá를 수식하는 말일 테니 단수 여성형이 나와야 할 거라고 (제대로) 생각했다.
(찾아보니 'angry'라는 뜻이다.)
그런데 (a)가 단수 여성형인 이유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목적어 la cena가 단수 여성형이라서인가 아니면 주어 mamá가 단수 여성형이라서인가?
영어의 'have(조동사 아닌 본동사) something ready'처럼 생각하면 (a)는 아마 주어 말고 목적어에 일치하는 것 같긴 하다.
그러고 보니 문제 풀 때도 이렇게 생각하고 풀었다.
tener 다음에 과거분사가 나와서 순간 '완료를 이렇게도 표현하나?' 하고 당황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본동사 have something ready와 같은 구성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30번은 정확히는 몰라도 아마 아센또(acento, 스페인어에서는 acute accent를 띨데tilde라고도 하나 보다)의 유무에 관한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언제 붙이고 언제 안 붙이는지 잘 모른다. 지금도 잘 모른다.
어쩌면 애초에 다른 의문사를 사용해야만 하는 걸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일단 정답은 4번이라고 한다.
스페인어는 여기까지만 해 두자.
- 독일어
4번.
'우리 이모는 50살 정도다'인 줄 알고 (a)에는 무조건 etwa가 들어가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3번을 골랐다가 틀렸다.
B의 말은 '그치만 너희 이모, 사진에서는 ____해 보이셔.'라고 이해했다.
bald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검색해 보니 '거의'라고 한다. '곧'으로는 배운 적이 있긴 한 듯.
정답이 2번이라는 걸 알고서 검색해 보니 gut에는 부사로 'a little more than'이라는 용법이 있었다.
gut 50 Jahre alt : a little more than 50 years old.
anders는 differently라는 부사. 사진에서는 달라 보이신다는 말이었구나.
5번은 맞히긴 했지만 반쯤은 찍었다.
선지 단어를 검색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문제 풀 때는 A 문장 전체를 제대로 못 보고 '도로가 눈으로 미끄럽다?'인가 했는데,
'어제 눈이 강하게stark 왔다'는 문장을 보니 '도로가 눈으로 가득하다'가 아닐까 싶다.
deshalb가 '그래서'인 것도 다시 기억해 두자.
그래서 느리게 운전해야 하고, 하늘은 아직도 ___하다. (immer noch가 한 덩어리로 '여전히')
이쯤 알고서 선지를 보니 blau(blue)는 아니고, halb(half)도 아니고, genug(enough)도 아니고, wenig(little)도 아니니 'bedeckt'가 뭔지는 몰라도 이거겠구나 하면서 5번을 골랐더랬다.
이제 드디어 bedeckt를 검색해 보니, 'covered', 'overcast(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인)'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답정리를 제대로 하려면 아직도 독일어 두세 문제와 프랑스어 7문제, 그리고 한문 한 문제가 남았다.
그런데 지금 너무 지쳤다... 나머지 오답 해설은 나중에 작은 외국어 공부 일기 블로그에 올리거나
아니면 그냥 혼자 검색해서 이해만 해 보고 말아야겠다.
이 글에 해설을 포함하지 못한 오답 목록은 아래와 같다.
독일어 28, 29, 30
프랑스어 3, 4, 11, 22, 28, 29, 30
한문 26
- 아랍어 글자만 알고서 12점 8등급 확보한 비결 (ㅋㅋ)
1~3번은 말 그대로 글자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니까 여기서 5점 확보.
4번의 숫자 문제는 솔직히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당황했는데, 영 아닌 것들을 지우고 나니까 풀 수 있었다.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첫 글자가 1, 마지막 글자가 9라는 건 선지를 대충 보면 알 수 있었다.
가운데 글자가 4라는 걸 몰랐다.
이상 6점 확보.
5번부터 9번까지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랍어를 거의 한 단어도 모르니 원...
그냥 심심풀이로 7번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나 한번 읽어 보았다.
f..a...t(인두음)...i...m...a...h 파티마! (마지막 모음 부호는 뭔지 잘 모름)
2(성문파열음)...a...m...i...r...a...h 아미라? (같은 모음 부호가 붙어 있네? 여성 명사 어미랬나...)
10번은 못 풀겠다 싶어서 가위표를 치려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대답하는 사람이 앞에 'wa' 즉 'and'를 붙이고 그 뒤에 '알레이쿠무 앗살라무(??)'라고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럼 A가 대충 '앗살라무 알레이쿰'과 같은 인사를 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다른 선지는 제대로 안 읽고 그냥 그것만 찾아냈다.
(사실 문제 풀던 당시에는 '알레이쿰 앗살람', '앗살람 알레이쿰'인 줄 알았다. 문제에 나오는 말이랑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잘 모른다...)
근데 답안지 대용으로 쓰던 메모장에다가 10-5라고 입력해야 할 걸 9-5로 입력해서 채점할 때 틀렸다고 해 버렸다.ㅋㅋ 일종의 마킹 실수...
녹화를 마치고 나서 이 문제는 맞혔을 것 같은데 정답 목록에 없는 것 같길래 다시 채점해 보다가 깨달았다.
이상 7점 확보.
13번. 나는 A가 뭐라고 말하는지 하나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봐도 선물을 주고받는 상황이므로 응당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랍어로 '감사합니다'는 '슈크란'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선지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지 않고 그냥 그것만 찾아냈다.
이상 9점 확보.
15번은 맞히지는 못했지만 정답 후보를 둘로 추려냈다는 점에서 뭔가는 해 낸 문제였다.
상술했듯이 수능 제2외국어의 이런 문제 유형에서는 하나의 문장만 잘 끼워넣어도 문제가 금방 풀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지만, 이번 아랍어 15번은 아쉽게도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저 마지막 자리에 문장 b를 집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문장 b의 첫 번째 단어가 수사(numeral) '3'이기 때문이다. (ثَلَاثَة. 다행히 이런 기초적인 수사 몇 가지는 외워 뒀었다. 사실 문장 b의 첫 단어는 끝부분이 좀 다르게 생겼는데... 아직은 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언어 시험지에서 보니 이 문제유형에서는 '식당 예약 상황'이 자주 나오고, 그런 상황에서는 꼭 손님이 총 몇 명인지를 묻고는 한다. (실제로 저 대화가 뭐에 대한 건지 나는 아직도 전혀 모른다.)
b가 만약 그런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면 첫 단어가 '3'인 만큼 '세 사람이요'와 같은 의미일 가능성이 있다.
위 대화가 애초에 식당에 관련된 게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3'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의문문일 가능성은 좀 낮아 보인다.
그런저런 이유로 b가 끝에 나오는 선지 두 개로 후보를 추렸는데, 거기서 더 뭘 할 수가 없고 찍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답안지에는 그냥 2or5 라고 써 놓고 넘어갔다.
19번은 맞혔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맞힌 것은 묘하게 뿌듯하다.
이 문제도 딱히 뭘 제대로 알고 맞힌 것은 아니고 편법에 가까웠는데 그래도 아랍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왠지 뿌듯한 편법이었다.
(b) 그림을 보면 칠판에 '안녕하세요'가 적혀 있다. 한국어 수업을 듣는 상황이다.
일정표에서 'Korean'을 찾아 본다.
완벽하게 읽지는 못하지만 대충 'al-Kuuriyya'라고 적힌 단어가 첫 줄 맨 왼쪽에서 보인다.
'아, 10시에 한국어 수업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숫자 모양은 잘 모르지만 그냥 때려맞히고 넘어가기로)
그러고 나면 b가 가장 먼저 나오는 선지 2개가 남는다.
좀 고민했는데, 그 중 더 그럴듯해 보였던 것이 4번 b-c-a였기 때문에 4번을 골랐고 다행히도 실제로 정답이었다.
2번보다 4번이 더 그럴듯해 보였던 이유는 (c)가 식사를 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10시에 한국어 수업을 하고 난 다음의 일정은 아마 12시인 것으로 보이는데,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면 12시는 전형적으로 잘 어울리는 시간대이므로 (c)를 12시에 연결시켰다.
그 밑에 적혀 있는 시간이 '15시'인 것 같은데, 솔직히 문제를 풀 때는 숫자 모양에 익숙하지 않아서 잘 이해를 못 했었다.
이상 11점 확보. 와! 9등급은 탈출이다!
나머지 1점은 26번에서 얻어냈다.
26번은 부르즈 할리파 건물 사진을 보여주고 그 오른쪽에 아랍어로 두 개의 문장을 적어서 '글이 공통으로 설명하는 도시를 찾으라'는 문제인데, 아마 많은 수험생들이 그리했을 것이듯이 나도 글은 전혀 읽지 않고 그냥 사진을 보고서 두바이를 골랐다.
(근데 고르면서 순간 긴가민가했다. 이 건물이 두바이 게 맞던가? 다른 선지를 둘러봤지만 다행히 그럴듯해 보이는 게 없어서 그냥 그대로 넘어갔다.)
그렇게 (거의) 글자만 아는 채로 수능 제2외국어 아랍어 과목에서 12점을 확보했다.
아랍어 시험지의 나머지 문제는 내가 지금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마지막 여담으로 한문 문제지에서 마주한 웃픈 지문을 하나 공유하고 마치겠다.
'수능 제2외국어 전부 다 풀기'같은 짓에 몇 시간을 쏟고 나서 이 문제의 지문을 보니 웃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서 문제를 풀다 말고 마우스로 ㅠㅠ를 그려 보았다.
그래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