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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공부와의 추억 + HSK ibt 6급 시험 후기 (ft. 중국 서버 이상으로 1시간 지연)

cha5ylkhan 2025. 3. 23. 02:02

1. 중국어와의 인연, 함께한 시간에 비해 한참 모자란 실력에 대한 한(恨)

17년 전 중학생 시절, '철원도서관(현 철원교육도서관?)'에서 무료 중국어 강의를 수강하며 중국어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무슨 경로로 알게 되어 무슨 마음으로 수강신청했는지 그런 건 다 잊어버렸지만, 꽤 즐겁게 공부했던 건 기억이 난다. 처음엔 꽤 큰 강의실을 꽉 채우던 인원이 언제부턴가 네 명, 세 명으로 줄어서 옹기종기 수업하던 모습도. 그래도 그 중에 나는 꽤 잘 따라가는 학생이었다.

난생 처음 내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은 조선족이라고 했다. '나도 너희처럼 된장찌개 먹으며 자랐다'던가 그런 얘길 하셨던 게 떠오른다. 남동생과 함께 각자 강의를 하나씩 맡으셨는데 남동생 분은 우리말을 잘 못 하셨고 왜인지 영어 강의를 담당하고 계셨다.

중국어 수업 첫 시간에 자음과 모음의 발음을 배울 때, 중국어의 'ü'를 발음하려면 휘파람을 부는 듯한 입모양을 하고 목소리를 내면 된다고 배웠다. 음성학도 언어학도 하나도 모르던 나에게 그건 꽤 유용한 요령이었다. 그 덕에 나는 낯선 'ü' 발음을 그럴싸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 소리를 '전설 원순 고모음'이라고 부르고 IPA로는 [y]라는 글자로 적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대략 2년쯤 뒤의 일이었다. 독일어를 공부하며 [y]를 '전설 원순 중모음' [ø]로부터 구별해서 발음하려다 보니 정말 휘파람 불듯 해서는 턱이 좀 너무 벌어지는 것 같아서, [y]를 발음할 땐 좀더 앙 다무는 쪽으로 바꿨다.)

내가 중국어를 처음 만났던 17년 전 그 해는 나의 외국어 '입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였다.

계기는 단순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면 제2외국어 수업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일본어나 중국어 학습지를 하나 신청해 주겠다고, 한번 공부해 보라고 하신 것이다.

어째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완전히 신이 나 있었다. 며칠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재능 중국어'와 '구몬 일본어' (그리고 아마 재능 일어랑 구몬 중국어도?) 사이트에 들어가서 학습지 샘플을 구경하면서 온통 설레는 마음으로 어느 걸 공부하는 게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게 아주 분명하게 생각난다. 온통 낯선 글자로 적혀 있는 말들을 내가 곧 읽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당시 나한테는 더없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재능 중국어' 대신 '구몬 일본어'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철원도서관에서 무료 중국어 강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어 공부는 그걸로 대체하기로 마음먹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해 3월 구몬 선생님이 집에 방문하면서 벽에 붙이는 히라가나 표와 가타카나 표를 돌돌 말아 가져오셨을 때, 선생님 가방에 담긴 가타카나 표에 적혀 있던 'エ[에]'*라는 글자를 보고 혼자서 '일본어로는 '에'라는 소리를 이렇게 적는 거구나'(이것이 당시에 내가 가졌던 이해였다)라고 생각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희열감을 느꼈던 일이 있다.

* 당시에 정말 이렇게 회색으로 구석에 '[에]'라고 적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남에게 나의 외국어 '입덕'에 대해 말할 일이 있으면 보통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삼아서 설명하고는 한다.

그 뒤로 일본어 공부에 푹 빠져서 틈만 나면 일본어로 뭔가를 써 보고 어디 카페에 일기를 올려서 첨삭도 받아 보려고 하고 아무튼 참 신나서 열심히 했다.

철원도서관 무료 강의를 통해 중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구몬 일본어 가타카나 표와의 첫 만남으로부터 조금 뒤의 일이다.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지만 실력이 느는 속도는 일본어 쪽이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 분명 중국어 공부도 재미있었지만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구몬 일본어 학습지의 퀄리티가 철원도서관의 무료 중국어 강좌보다 더 뛰어났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진입장벽에 대해 말하자면 아무래도 일본어가 중국어보다 훨씬 쉬울 수밖에 없었다. 성조도 그렇고 자모음의 발음도 그렇고 어순도 그렇고 형태론 유형(교착 vs 고립)도 그렇고, 일본어 쪽이 중국어보단 한국어와 훨씬 비슷하니 말이다.

내가 일본어와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던 당시에 어머니는 어디에서 들으신 건지 '일본어는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고, 중국어는 울고 들어가서 웃고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좀 일리가 있는 듯도 싶긴 한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 다른 데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도서관 무료 강좌가 몇 개월 짜리였더라, 구몬 일본어는 그래도 2년은 꾸준히 했던 것 같은데 중국어는 무료 강좌가 끝나고 나서 따로 제대로 된 투자를 못 했다. 여기저기서 무슨 과외처럼 받은 적은 있는데 좀 흐지부지했고, 내가 내 실력을 과대평가한 탓에 생겼던 창피한 경험이 몇 개 파편적으로 떠오른다.

그런저런 이유로, 꽤 순탄하게 금방 고급 단계까지 진입한 일본어 실력에 비해 중국어 실력은 1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 대충 뭐 한 HSK 3~4급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사이 본격적으로 외국어 공부에 맛을 들인 나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시간 순) 공부를 '찍먹'했고, 외고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다가 외대에선 베트남어를 전공했다. 그러면서 전공한 언어는 나름대로 상당히 잘 구사하는 수준까지 도달해 보았고, 스페인어는 외고 전공생들과 함께 몇 가지 수업을 들으면서 나름 칭찬도 받았으며(창피한 일도 좀 있었지만), 독일어는 1년간 꾸준히 수업을 들어서 A2 자격증도 땄다.

이 화려한 '덕질'의 역사에서 일본어의 뒤를 이어 무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중국어였으나, 그 긴 시간 중국어 실력에는 거의 아무런 향상도 없었다. 며칠~몇 주 더 먼저 시작한 일본어는 그렇다 치고 몇 년 배우지도 않은 러시아어, 베트남어에 비해 중학생 때 배우기 시작한 중국어의 실력이 한참 모자란 것은 늘상 어딘가 아쉬운 노릇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서야 시사중국어학원에 다니면서 비로소 HSK 4급에 합격했다. (어쩌면 유형론적으로 중국어와 상당히 비슷한 베트남어에 많이 익숙해진 것이 중국어 공부에 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한 1~2년 정도 잠깐 중국어 공부에 그나마 본격적으로 신경을 썼다. 군대에서 동기가 중국어 공부를 한다길래 이것저것 알려도 주고 자료도 공유하면서 HSK 4급을 따는 데에 도움을 주었고, 나는 나대로 공부해서 HSK 5급을 땄다.

그러고는 전역을 했고, 다시 몇 년 동안 중국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군대에서 땄던 HSK 5급 성적이 만료되자 2021년엔가 다시 그냥 거의 똑같은 성적으로 5급을 한번 갱신한 게 다였다.

2019년에 '오픽 도장깨기'에 도전할 때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베트남어에서 모두 'AL' 성적을 받았지만 유독 중국어에서만 한 단계 아래인 'IH'가 나왔고, 올해 호기롭게 오픽 도장깨기에 다시 도전한다고 선언해 놓고 저번 달에 또 중국어만 IH 성적을 받아 버렸다.

(올해 베트남어와 러시아어 오픽 도전은 아직인데, 앞으로 당분간 한국어교원 양성과정 수업을 수강하게 되어서 이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한 가지 구차하지만 유관한 사실을 언급하자면 2019년에도 올해에도 유독 중국어 오픽 시험 날에만 감기가 들어서 온전한 컨디션이 못 되었다. 유독 중국어 시험 날에만!

이런 상황이니만큼, 그리고

17년 전 같은 해에 겨우 며칠, 몇 주 먼저 공부를 시작한 일본어 실력은 중국어보다 훨씬 먼저, 훨씬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으니, 적어도 JLPT N1 수준에는 진즉에 도달해 있으니,

중국어 실력도 (얼마 전까지 최고 단계였던) HSK 6급 수준으로 언젠가 끌어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또는 그러고 싶다, 하는 의무감 내지 막연한 소망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17년을 함께해 온 중국어를 이렇게 띄엄띄엄 아는 데 대해 한(恨)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리고 오늘(3/22) 드디어 난생 처음 HSK 6급 시험에 도전하고 왔다.

17년 전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하던 것도 아마 3월 요맘때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니 공교롭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소 연습하던 것보다 훨씬 잘 본 것 같다. '턱걸이 합격'이란 목표는 분명 달성하게 된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럽고, 여전히 실력에 부족함이 너무 많지만 약간의 한풀이는 된 것 같아서 후련하다.

자세한 후기는 이제 시작.


2. 25년 3월 22일 HSK 6급 ibt 시험 후기

어학 시험을 이렇게 마음 먹고 준비해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토익이나 JPT, JLPT 같은 영어/일본어 시험은 전에도 말했듯이 솔직히 거의 준비하지 않고 갱신하는 개념으로 응시하는 편이고, 베트남어나 러시아어 시험을 치르기엔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보여서 엄두를 못 내는 탓에 베트남어와 러시아어는 그저 하릴없이 잊어버려 가는 중이다. 근데 베트남어나 러시아어도 요 몇 주 중국어 공부했듯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다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좀 생기는 듯도 싶다.

이번에 중국어 성적을 갱신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원랜 HSK 5급을 280점대쯤으로 올려 볼지 아니면 6급에 도전할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월운 님의 의견을 듣고 6급에 한번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주 오래 미룬 숙제를 이제 드디어 해치워 본다는 느낌이었다.

요 몇 주 나라는 사람 치고 꽤 집중해서 공부했다. (매일 예외 없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꾸준히 출퇴근길에 HSK 6급 듣기 mp3 파일을 들었고, 저녁을 먹을 때는 대만 드라마나 중국 드라마를 시청했으며, 중국어 언어교환 오픈채팅방에 찾아가서 종종 연습을 했다. (그러다 대만-한국 언어교환 오픈채팅방에서 알게 된 대만 사람들하고 개인톡을 하게 되었는데 중국어로 통화 연습도 할 수 있었고, 중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험을 하게 되어서 그게 또한 재미있다. 추후 별도로 포스팅.)

유튜브에서 이 영상들도 봤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gEDVhw4aQ

https://www.youtube.com/watch?v=1AD5TeuwMcs

 

 

정확히 어디서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후술.

몇 번인가 시간을 내어서 연습 모의고사도 풀어 보고 기출 문제도 풀어 봤다. 딱 한 번을 빼고는 독해 시간이 늘 부족했다. 당장 그저께인가 풀었던 기출문제도 세 지문인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막상 오늘은 익숙한 소재가 많았던 덕분인지 이따가 이야기할 시원스쿨 '적중특강'에서 본 팁 덕분인지 시간을 아주 알차게 잘 썼다. 일단 모든 지문/문제를 다 읽어는 보았다.

 

시험 당일 오늘 아침 이야기를 해 보자.

6급 시험은 오전 9시까지 입실이다. 이동 시간 고려하면 기상 시각은 출근하는 날이랑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

하필 오늘따라 먹은 게 얹혔는지(실은 먹고 바로 누워 잔 거라 자초한 거) 새벽 두 시 반에 깼다. 더부룩하고 한데 또 HSK 공부하기는 싫고 그래서 전에 블로그에 썼던 '이쓰쿠일(Ithkuil)의 자연어화' 실험을 떠올리면서 이것 저것 적어 보다가, 생각해 보니 생성형 AI한테 시켜 보면 결과가 재밌겠다 싶어서 그렇게 해 보잔 메모를 적어 놓고서 다시 누웠다.

두 시간 정도 마저 자고, 7시 반엔가 알람을 듣고 깼다. 잠을 깨느라 구글 크롬을 켰는데 인공지능 번역기의 발전이 장차 언어 장벽을 무력화시킬 것임을 이야기하는 기사가 메인에 떠 있었다. 어학 시험 보는 날인데 참 묘하게 의미심장했다.

나는 준비 시간을 잘 가늠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막연히 생각하고 침대에 누운 채로 새벽에 떠올렸던 '실험'을 chatGPT, perplexity, copilot한테 이야기해 보면서 놀고 있는데* 아내가 지금 준비 안 하면 늦는다고 경고해 줘서 정신을 퍼뜩 차렸다.

* 이것도 재미있으니까 나중에 따로 포스팅해 보든 해 보자. 대답하는 거 보면 잘 알아는 듣는 것 같은데 엉뚱한 짓을 가끔 한다.

지금 준비 안 하면 늦는다는 말은 경고성 멘트가 아니었다.ㅋㅋ...

나름 공들여 준비한 13만원짜리 시험을 늦어서 못 보면 얼마나 손해가 막심한가. 열심히 뛰어서 겨우 안 늦는 마지막 전철을 탔다.

전철에 타서도 HSK 공부는 안 하고 계속 생성형 인공지능을 붙잡고 하던 걸 하다가 답변이 영 시원찮길래 관두고 기출문제 듣기 파일을 들었다. 대본을 보며 들었다. 내려서 걸을 때는 모의고사 듣기 파일을 들었다.

시험장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TMI: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에 집에선 화장실도 한번 못 들어가 봤다. 시험장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엘 먼저 다녀왔다.)

다들 폰 끄고 공부 자료랑 다 가방에 넣어서 뒤에 두고 컴퓨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모니터에 붙어 있는 수험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누르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른 자리에서 감독관님이 '아직 오류 나죠?'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니시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과연 '프롬프트 에러'라는 오류 메시지가 나오고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감독관님 말이 좀 심상치 않았다.

"서버 문제가 있어서 시험을 제때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

는 것이었다.

6급 시험 보는 게 처음이라 정상적인 시험 시작 시각이 언제인지를 몰랐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그걸 감독관님한테 여쭤 봤더니 원래라면 9시 반 시작이랬다. 지금이 몇 시인가도 여쭤 봤는데 다른 수험생 분이 9시 25분이라고 알려줬다. 감독관님도 또 알려주셨다.

휴대폰을 꺼 놓았을 텐데 저 분은 어떻게 안 거지? 하고 의아해하다가 내 컴퓨터 화면을 보니 우측 상단에 빨간 글시로 현재 시각이 아주 잘 적혀 있어서 다소 민망했다.

시험이 끝나고 일정이 하나 있어서 좀 초조했다.

어쨌든 심심한 침묵 속에 시간은 계속 갔다. (3월 하순인데 너무 겨울 옷을 입었는지 꽤 더웠다.)

시험 직전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럴 때 뭐라도 한 자 더 봐 두면 시험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거랑 별개로 너무 따분하기도 해서, 수험자끼리 서로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도 알려주면 안 되냐고 손 들고 질문을 할까 꽤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왠지 민원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휴대폰이 없어서 어디 연락을 취할 수도 없는데 시험 끝나고서의 일정은 어떻게 조정하지, 하는 걱정이 중간중간 떠오르기도 했다.

 

9시 55분까지 무려 약 50분 정도를 다같이 그렇게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침묵 속에 보냈다. 뭐 중간에 감독관님이 시험 요령을 짧게 설명하는 시간이 있기는 했다.

지금의 오류는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서버를 원격으로 보고 있으며 늦어지는 시간만큼 풀 시간을 더 드리겠다(당연한 거 아닌가), 만약 환불을 원하시면 환불해 드릴 테니 다음 시험을 치르시라,

그런저런 공지가 띄엄띄엄 있었다. (우리 고사실에서 환불을 신청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9시 55분쯤 드디어, '10시 반에 시험을 시작하겠다'라는 안내가 있었다. 딱 한 시간 늦게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럼 아직 시험 시작까지 30분 넘게 남았으니 지금 휴대폰 잠깐 가져다가 일정 조정 연락을 할 수 있나'하는 그런 생각도 순간 스쳤는데, 당시에 pbt 지필 시험은 이미 진행중이었을 테니까 휴대폰은 못 쓰게 하려나 싶었다. 물론 뭐 pbt 시험 문제가 유출되지 않는 한 내가 전화기를 사용하든 않든 무관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 그래서 감독관 전화를 빌려 써야 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막 하던 중에, 뒤에서 어느 수험자 분이 '계속 이렇게 앉아 있어야 하냐'라고 총대 메고 말씀을 해 주시었다.

덕분에 감독관 허가 하에 10시 20분까지 휴대폰도 사용했고, 기출문제집 '비법 노트'도 집중해서 보면서 마지막으로 단어를 좀 외웠다. 이때 확인했던 弥补mi2 bu3 라는 단어가 쓰기 문제에 등장해서 덕을 봤다. 막상 쓰기 풀 때는 mi bo, mi po 인 줄 착각해서 한참 헤매다가 겨우 입력했지만 어쨌든 뜻은 문제없이 이해했다. (여성 자동차 수리공?정비공?이 모자란 완력을 기교?기술?로 보충한다는 맥락에서 나왔음)

하여튼 그러다 10분 전에 다 정리하고 로그인, 신분 확인 등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서 시험이 시작되었다.

9시 반 시작으로 세팅되어 있어서, 늦게 시작하면 예를 들어 듣기 30번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시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10시 반이 되니까 정상적으로 듣기 1번부터 순서대로 잘 제시되었다.

좀 피곤하니까 이제부턴 개조식으로 대충 정리해 본다.

- 위에 올린 시원스쿨 영상이 태도 측면에서 매우 도움됐다.

독해 3부분 '연결사'(구문이란 뜻일 듯) 먼저 찾으란 팁이 매우 도움됐고,

2부분에서 하나가 맞는거같으면 곧장 넘어가란 얘기도 도움 많이 됐고.

덕분에 연습하던 때보다 훨씬 시간 관리가 안정적이었다.

- 청해도 평소보다 훨씬 잘 본 거 같음. 안 들리는 게 매우 많긴 했지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최근에 공부한 단어도 좀 나온 거 같고.

- 그리고 평소 연습할 땐 시험 시작 전에 음악 나올 때 선지 미리 읽기를 일부러 거의 안 했었는데, 이번엔 원껏 했음. 시간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거의 한 3번까지는 선지를 미리 읽고 시작해서 아주 안정적으로 푼 것 같다.

- 글자 크기 설정하는 법을 감독관님이 알려줘서 (며칠전에 유튭에서 보기도 했지만) 그거 덕분에 최대로 하고 편하게 봤고

- 쓰기 답안에 '堅持不懈'라든가 '拼命學習'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건 위에 올린 '성룡쌤' 영상에서 배운 표현이다. 전에 모의고사에서도 한 번 보고 오늘 독해 파트에서도 마주친 '獨一無二'도 사용했는데 적절하게 쓴 건지는 모르겠다.

- 堅持積極的態度 라고 썼다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왠지 아까 10시 20분까지 봤던 비법노트에 '保持'가 나왔던거같아서 그걸로 바꿈. 맞는진 모름.

- 청해는 암튼 잘 기억 안남

그래도 꽤 잘 들었다는 생각이다

- 청해 문제 중, '작은 능력도 큰 도움이 된다?'

거기 나온 本领이란 단어, 이번에 공부하며 새로 외운 것.

嗓子가 크다는 게 뭐냐고 다른 제자들이 비웃었는데 주인공이 제자로 받아들여줌.

(嗓子를 보고서 바로는 뭔 뜻인지 잘 안 떠올랐는데 이후에 떠올랐음.)

- '제자'라든가 뭐 그런 단어 맨날 나오는 거 출퇴근길에 들으며 익혀둔 게 도움이 됐네.

- 독해는 그간 연습했듯이 3부분->4부분->2부분->1부분 순서로 풀었고, 모든 문제를 다 읽어는 보았다.

2, 3, 4부분은 그동안 연습한 것 중에 제일 잘 본 것 같은데, 1부분은 솔직히 단 한 문제도 제대로 못 풀었다.

1부분이 원체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였던 적은 없는데 오늘은 진짜 좀 너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독해 2부분

제일 게으른 사람한테 상 주겠다. 이 규칙(?)에 맞는다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라. 다들 손 들었는데 남자 한 명이 손 드는 것조차 귀찮아서 손 안 듦. 그사람더러 ‘축하합니다. 상받으세요’ 했더니 ‘麻烦 돈좀 나한테 갖다주쇼’

이때 쓰는 것과 같은 麻烦이 '번거로우시겠지만'에서 부탁 표지로 문법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귀찮다는 뜻으로 쓴 건 아닌 걸로 적어도 시험 풀던 당시엔 그렇게 이해했다.

- 청해 3부분

동지에 교자를 먹는 이유

귀에 동상걸린 걸 보고 먹기 시작했대든가

- 독해 3부분 (번호는 임의로 내가 붙인 것)

1. 무슨 나무... 기생하는 뿌리.... 내용 거의 이해 못했는데 시원스쿨 팁 영상 덕에 바로 앞뒤만 보고 매칭해 가면서 풀었다.

그리고 네개만 풀고 마지막은 안보고 찍엇음

2.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다 잘 푼 듯.

독해 4부분 (번호는 임의로 내가 붙인 것)

1 기후변화 애초에 쉬운 소재기도 하고 배경지식이 큰 도움 된 듯 많이 안 읽고 풀었다.

利大于弊 성룡쌤 영상에서 봤던 표현이 나와서 도움 되었다. 기후변화가 그렇단 이야기라서 틀린 선지였던 듯.

2 안약 넣는게 괜찮을거란 통념. 실제론 아님. 방부제, 독성, 안압 상승, 녹내장(청광안이라고 하는거같았음) 녹내장에 대한 배경지식이 의외로 큰 도움 됐다. 몰랐으면 빠르게 못 풀었을 듯

3 기억안남. 잘풀었을듯.

4 기억안남. 잘풀었을듯.

5 인터넷상의... 디지털 쥐?? 잘 이해 못했는데 뭔가 잘 삭제를 못하고 모아두는... 넷상 호더같은 건가 그런 내용 다 이해는 못했지만 문제는 거의 다 맞혔을 듯.

쓰기

주인공: 古慧唱

주인공의 중?고등?학교 샘?教练: 李世川

여성 차수리공 汽修 인데 답안 작성할 때 자꾸 xiu qi 라고 헷갈려서 秀气만 나오고 찾는 한자가 안 나오니까 당황했었음. 修车로 바꿔서 쓴 데가 많았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

차 수리는 남자의 영역이라는 게 刻板的认识이지만 그걸 打破했다

深圳职业技术学校

深圳职业技术大学

내가 답안에서 '工程师'라는 표현을 썼는데 문제에 없던 표현이라 적절했던 건지 모르겠다.

내가 답안에서 '영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문제에 없던 표현이라 적절했던 건지 모르겠다.

(6급 쓰기는 주관적인 의견을 배제하라던데 거기에 배치되는 걸지도...)

夸奖她说:“。”

이거 맞는 표현인가

夸奖이 夸张인 줄로 알다가 겨우 며칠 전에 대만 사람이랑 채팅하면서 교정 받아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문장 주인공의 말을 인용하는 표현으로

'明明说'를 썼다가, '大胆说'를 썼다가, 마지막엔 '自豪地说'를 썼다.

说:“。” 이후 스페이스한번 했는데, 이게 맞나

450자로 맞추려니 쉽지 않아서 마지막은 용두사미.

'电动方程式' 뭔 말인지 모르고 걍 외워서 씀.

맥락으로 봤을 때 주인공이 전기자동차를 만들었다든가 수리했다든가 그런 얘기였을 건 같다.

能源...


독해 풀던 중이었는지 청해 풀던 중이었는지, 생각보다 잘 풀리길래 끝나고 후기 쓰려면 기억해 놔야지 하고 좀 구경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턱걸이 합격을 목표로 하는 내가 그런 짓을 할 군번은 아닌 거 같아서 그만뒀다.

요새 좀 생각을 하느라 블로그에 글을 잘 못 쓰고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일단은 내 인생이다.

그리고 무서울 게 뭐가 있나.

잘 생각해 보면 무서울 게 없다.

무서워하느라 기회를 놓치거나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을 나는 특별히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일단은 내 인생이다.

이상의 모든 이야기와 별개로 외국어 구사력을 생계유지의 주요 수단으로 삼을 수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은 도무지 떨쳐지지가 않는다.

 

 

“외국어 몰라도 된다?” AI 실시간 번역의 현재와 미래

적어도 언어 번역 기술에 관한 한 필자는 미래에 살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필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탈리아와 멕시코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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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열심히 하되 잘 생각해야 할 거 같다.


아무튼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어느 정도 한풀이에도 성공했으니 일단 기분 좋다!

+ ibt 시험도 수험표는 가져가야 한다.

+ ibt 시험의 눈아픔에 대해 우려가 있었는데, 적어도 오늘은 거의 불편함 못 느꼈다. 글씨 크기를 최대로 조절한 덕인가? 그런 기능이 있다는 것도 장점.

+ 초 단위 타이머가 제공된다는 건 ibt 시험의 엄청난 장점이다. 시험문제 풀 때 아날로그 시계로 시간 보는 게 얼마나 불안한지.

+ 저번에 모의고사 리뷰 쓰면서도 말했지만 병음 입력, 수기 입력 둘 다 지원되는 쓰기 시험은 ibt가 무조건 이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으면서 첨삭도 편하게 마음껏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