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짧] 수어 대화 하다가 실수해서 빵 터진 이야기

cha5ylkhan 2026. 2. 8. 13:55

때는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식을 한창 준비하던, 약 2년 반 전.

내 유일한 농인 지인 선생님께 청첩장을 드리려고, 그분께 함께 배웠던 청인 한 분과 함께 만나 고깃집에 갔다.

농인은 고기를 직접 구워 먹으면 식사하면서 수어로 대화하기가 불편하다는 얘기를 전에 ‘유손생’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접한 적이 있어서, 일부러 직원이 구워주는 곳으로 갔다.

식사를 하면서 수어로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내가 아래와 같은 단어를 썼는데 농인 선생님하고 청인 학생 분이 함께 빵 터졌다.


그러고는 그건 ‘더럽다’고, 내가 원래 하려던 말은 아래와 같은 동작이라고 다시 알려주셨다.


손가락이 이동하는 루트가 거의 비슷한데 방향만 반대라 (손모양이 좀 다르긴 하지만) 초보인 나로서는 헷갈릴 법도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뭔가가 ‘모자라다’고 말하려다가 엉뚱하게도 뭔가가 ‘더럽다’고 말해 버린 것이다.

이게 좀 민망하긴 한데 재미있는 경험이라 블로그에 올리려고 그때 바로 위의 이미지만 얼른 찾아다가 임시저장을 해 뒀었는데,

그래 놓고는 결혼준비다 신혼여행이다 업무다 워낙 바쁘다 보니 이런 임시저장글이 있는 줄을 2년 반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찌나 급하게 저장했던지 심지어 ‘제목없음’ 글이라 더욱 잊(히)어지기 좋았음.

게다가 이미지만 달랑 올려 놓고 각 수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써 놓질 않아서, (‘더럽다’는 다행히 보자마자 알아봤지만) 글을 올려 보려고 이제 다시 보니 두 번째 단어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이 에피소드 자체는 어렴풋이 기억이 났지만 ‘기름’을 말하려다 실수한 줄로 잘못 기억하고 있어서, 처음엔 한국수어사전에 ‘기름’을 검색했다가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엉뚱한 동작이 나오길래 당황했다. (지난 2년 수어 공부를 게을리한 업보...)

결국 ‘수형으로 찾기’ 기능으로 한참 헤매다 겨우겨우 찾음.

손모양이 좀 다른 거 같은데... 때문에 한참 헤맴

근데 사실 이건 ‘수형으로 찾기’라기보다 ‘수형과 수위로 찾기’가 아닐까?

이름이야 뭐가 됐든 나는 이 기능을 아주 좋아한다. 이 기능으로 수어 단어를 검색하다 보면 자연스레 수어가 음성언어처럼 이산적인 빌딩블록(음소 또는 ‘수어소’)로 이루어진 언어임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이 글이 재밌으려면 내가 정확히 뭘 말하려다 실수한 건지를 밝히면 좋을 텐데, 정말 아쉽게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글쎄 그냥 막 아무거나 넣어 보자면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하려다 ‘시간이 더럽다’라고 했을 수도 있고, ‘돈이 부족하다’라고 하려다 ‘돈이 더럽다(최영 장군?)’라고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쉽지만 잊어버렸다.


한편 저번에 수어를 글로 적는 법(링크)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하고 전철에서 수어로 말 건 이야기(링크)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아래 두 단어도 자주 헷갈리는 편이다.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궁금하다’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심심하다‘

전철에서 수어로 말 걸기 에피소드에서는 내가 ‘궁금하다’를 ‘심심하다’로 잘못 말해서 농인 분들이 (아마) 내가 ‘인천’을 말한 줄 아시고 자기 고향 또는 사는 곳을 말해주셨다.


어원이 ‘인천이 심심한 곳이라서’는 아마 아니었던 것 같음.
그러나 어원이야 어찌됐든 화자들이 ‘심심하다’로 인천을 부르다 보면 공시적으로 인천에 심심한 이미지가 결부될 수 있는 건 사실이고 인천 입장에서 좋을 게 없으니, 해당 표현 대신 아래와 같이 한자 仁川을 본뜬 동작을 대신 써 달라고 권장한댔던 거 같다.
(누가 권장? 인천시가? 국립국어원이? 아마 둘 다?)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인천’


일일 조회수가 슬슬 떨어지길래 또 한 번 옛날 임시저장글을 발굴해 올려 본다. 사실 이제까지의 추세를 보면 장기적인 검색유입을 보장하는 건 이런 에피소드형 글보단 키릴 문자 글(링크)이나 nsx 글(링크)처럼 정보성이 있는 글이던데... 머 그런 것도 조만간 또 몇 개 써 봐야겠다. ‘머’는 놀랍게도 표준어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