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웅녀는 베트남 사람?!' - 유사언어학 파헤쳐 보기

cha5ylkhan 2023. 2. 5. 02:13

글을 하나 읽어 보자.


오늘 아침에, 언어학적 방법론을 통해 단군신화의 웅녀가 본래는 베트남 민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단군신화가 갖는 중요성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군신화의 핵심적 등장인물인 곰, 즉 웅녀가 저 멀리 베트남에서 왔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먼저 "곰"이라는 단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자로 곰 웅(熊)자는 고대 중국에서 *C.[ɢ]ʷ(r)əm과 같이 읽혔는데 이는 명백하게 우리말 "곰"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곰"이 베트남에까지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어로 "곰"은 gấu /ɣəw˧˦/ 라고 하는데, 음절의 어두음(onset) 이 마찰음(fricative)이고 어말음(coda)은 접근음(approximant)이다. 음절초의 마찰음은 프랑스의 역사언어학자 미셸 페를뤼(Michel Ferlus)가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여 1982년에 밝혀낸 베트남어의 어두 자음군 마찰음화(spirantization)[1]가 적용된 것으로, 고대 중국어의 *C.[ɢ]ʷ(r)əm에서 어두의 *C.[ɢ]ʷ가 변한 것임이 분명하다.

 

베트남과 한국을 평생동안 오가며 두 민족 간의 계통적 연관성을 밝혀낸 언어학자 스키추닐 오뒤에스프(Scitsiugnil Oduesp)는 여기에 베트남어(정확히는 원시 베트남어 Proto-Vietic)의 음절말 비음 접근음화(approximation of syllable-coda nasals)[2]를 추가로 증명하며 베트남어 "gấu"가 한국어 "곰"에서 왔음을 밝혔다.

 

지금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정부가 유물론적 사회주의 관점을 타협해가면서까지 국가적인 제사를 통해 기리는 베트남의 고대 임금 "훙왕"은 본디 한자로 雄王이라 쓰는데, 우리 식 음으로 "웅왕"임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저 멀리 한반도로 떠난 조상 웅녀를 그리워하고 기리며 그 근본을 잊지 않고자 위대한 왕 웅왕의 이야기를 구전해왔던 것이다.

 

이렇듯 언어적, 민족적으로 우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베트남과의 관계에 우리는 조금 더 정성과 마음을 쏟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1]Ferlus, Michel (1982). "Spirantisation des obstruantes médiales et formation du système consonantique du vietnamien"

 

[2]Scitsiugnil Oduesp (2019). "Approximation of syllable-coda nasals of Proto-Vietic and its implication on Koreano-Vietnamese linguistic relationships"


이상함을 감지했는가?

사실 이 글은 내가 2019년 4월 1일 만우절에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유사언어학 패러디 글이다.

이제부터 위 글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틀린 건지 조목조목 따져 보자.


오늘 아침에, 언어학적 방법론을 통해 단군신화의 웅녀가 본래는 베트남 민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 '웅녀'가 개인으로 실존했던 인물은 아닐 것이다. 온정적으로 읽는다면 '설화 속에서 베트남 민족을 상징하는 등장인물'이라고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하 내용을 읽다 보면 알겠지만 어쨌든 별로 영양가는 없는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단군신화가 갖는 중요성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군신화의 핵심적 등장인물인 곰, 즉 웅녀가 저 멀리 베트남에서 왔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 별 의미 없는 문장 (논증이 없음)

유사언어학 특징: 우리 민족과 모 민족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테마를 좋아함.

 

먼저 "곰"이라는 단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자로 곰 웅(熊)자는 고대 중국에서 *C.[ɢ]ʷ(r)əm과 같이 읽혔는데

-> 이 부분은 사실로 의도한 것이다.

다만 *C.[ɢ]ʷ(r)əm은 Baxter-Sagart(2014)의 재구(reconstruction)이고,

고대 중국어(상고한어, Old Chinese)에 대해서는 Baxter-Sagart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각자의 근거에 따라 여러 재구형을 제시해 놓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타계하신 정장상방 선생의 재구에 따르면 熊의 상고음은 *ɢʷlɯm이다.

 

이는[*C.[ɢ]ʷ(r)əm은] 명백하게 우리말 "곰"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 명백하게 헛소리다.ㅋㅋ 일단 전에 유사언어학 블로그 복붙 글에서 말했듯이, 저런 말을 하려면 "체계적인 음운 대응"을 제시해야 한다.

학술적인 글에서 '명백하다, 분명하다, 당연하다'라는 말은 "논증을 안 한다, 논증을 못 한다"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조심해서,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다만 *ɢʷlɯm이든 *C.[ɢ]ʷ(r)əm이든 熊의 상고음과 한국어 '곰' 사이의 계통적 연관성 내지 차용설을 주장하는 관점이 없는 것은 아닌 걸로 아는데, 일단 양보하여 그런 연관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차용의 방향이 중국어 -> 한국어인지 한국어 -> 중국어인지 판단할 근거가 별로 없다. 유사한 사례로 '바람'과 風(의 상고음)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곰"이 베트남에까지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 뒷부분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 근데 일단 '곰'이 중국어로 건너갔다는 것부터 별로 근거가 없으니 정황상 헛소리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베트남어로 "곰"은 gấu /ɣəw˧˦/ 라고 하는데,

-> 사실이다. 이런 데서까지 거짓말을 하면 유사언어학도 못 해먹는다.

 

[gấu /ɣəw˧˦/] 음절의 어두음(onset) 이 마찰음(fricative)이고 어말음(coda)은 접근음(approximant)이다.

-> 이것도 사실이다. 괜히 있어보이려고 영어 용어를 괄호에 넣었을 뿐이다.

 

[gấu /ɣəw˧˦/] 음절초의 마찰음은 프랑스의 역사언어학자 미셸 페를뤼(Michel Ferlus)가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여 1982년에 밝혀낸 베트남어의 어두 자음군 마찰음화(spirantization)[1]가 적용된 것으로,

->

1. Michel Ferlus가 1982년에 베트남어의 어두 자음군 마찰음화(또는 약화)를 밝혀냈다: 사실. 아래 [1]번 각주에 인용한(?) 논문도 실제로 있는 논문이다. 논문이 불어로 되어 있어서 어렵지만 재미있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옛날에 베트남어에 있었던 어두 자음군이 지금의 베트남어에서는 마찰음으로 바뀌었다는 내용의 연구이다.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여"는 그냥 있어 보이게 해서 독자를 현혹하려고 쓴 표현이고 별 의미는 없다.

2. [gấu /ɣəw˧˦/] 음절초의 마찰음은 바로 그 마찰음화의 결과물이다: 이것도 사실이다. gấu의 실제 어원이 되는 원시 비엣어(Proto-Vietic)의 '곰'은 *c-guːʔ 또는 *c-kuːʔ 와 같은 형태였을 것으로 재구되는데, 여기서 *ck라는 '어두 자음군'이 보인다.

 

[gấu /ɣəw˧˦/ 음절초의 마찰음 ɣ는] 고대 중국어의 *C.[ɢ]ʷ(r)əm에서 어두의 *C.[ɢ]ʷ가 변한 것임이 분명하다.

-> 안 분명하다. 아까 말했듯이 '분명하다'는 그냥 '논증을 못 한다'는 뜻이다.

  • 상술했듯이 '고대 중국어' 어두의 *C.[ɢ]ʷ는 Baxter-Sagart의 재구에 따른 것일 뿐, 모든 학자들이 熊 상고음의 어두에 저런 자음군을 재구하자고 합의한 게 아니다.
  • 두 번 양보해서, 고대 중국어 熊에 그런 어두자음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음군이 현대 베트남어 ɣ를 만들어냈을 수 있다고 쳐 주더라도,
  • 현대 베트남어 gấu /ɣəw˧˦/가 중국어로부터 유래했을 거라는 설은 왜 gấu /ɣəw˧˦/에 상승조, 즉 sắc 성조가 나타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Michel Ferlus가 재구한 원시 비엣어의 *c-guːʔ를 보면 끝에 성문 파열음 ʔ가 있는데, 정설에서는 통상 어말의 ʔ 자음이 현대 베트남어 sắc 성조를 만들어 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C.[ɢ]ʷ(r)əm에는 ʔ와 비슷한 것도 하나 없으므로, 성조가 왜 sắc인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베트남과 한국을 평생동안 오가며 두 민족 간의 계통적 연관성을 밝혀낸 언어학자 스키추닐 오뒤에스프(Scitsiugnil Oduesp)는

-> '스키추닐 오뒤에스프(Scitsiugnil Oduesp)'라는 언어학자는 이 세상에 없다.

패러디로서 약간의 유머를 의도한 부분인데, 언어학자의 이름 Scitsiugnil Oduesp를 거꾸로 하면 Pseudo-linguistics 즉 "유사언어학"이다. 근데 <Scitsiugnil Oduesp>를 '스키추닐 오뒤에스프'처럼 읽는 정서법을 쓰는 언어가 어디 있긴 한가 모르겠다.

 

여기에 베트남어(정확히는 원시 베트남어 Proto-Vietic)의 음절말 비음 접근음화(approximation of syllable-coda nasals)[2]를 추가로 증명하며

-> 아주 우연히도 역사적으로 저런 변화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그냥 내가 만들어낸 헛소리다. 각주 [2]에 인용되어 있는 논문의 제목도 내가 창작한 것이다. 번역하자면 '원시 비엣어의 음절말 비음 접근음화와 그것이 한-베간 언어적 관계에 대하여 갖는 함의'.

의도는 gấu /ɣəw˧˦/의 끝에 있는 w가 상고한어 *C.[ɢ]ʷ(r)əm의 끝에 있는 m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m > w 니까 '음절말 비음의 접근음화'.

 

[스키추닐 오뒤에스프라는 가짜 언어학자가 가짜 연구를 통해] 베트남어 "gấu"가 한국어 "곰"에서 왔음을 밝혔다.

-> 문장의 앞부분이 다 헛소리니 이것도 헛소리다. 의미론에서 이런 걸 다뤘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전제 실패...?

 

지금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정부가 유물론적 사회주의 관점을 타협해가면서까지 국가적인 제사를 통해 기리는 베트남의 고대 임금 "훙왕"은 본디 한자로 雄王이라 쓰는데, 우리 식 음으로 "웅왕"임을 알 수 있다.

-> 사실. 당시에 전공 수업에서 배웠던 사실들을 적었던 것 같다. '훙왕'은 베트남어로 Hùng Vương이라고 하고 한자로 쓰면 雄王인 게 맞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단군'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한다.

훙왕 제사에 '유물론적 사회주의 관점을 타협'하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는 건 우리 과 교수님 피셜... 난 아는 게 없어서 의견이 없다. 맨 앞에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라고 풀 네임을 쓴 건 별 이유 없고 그냥 있어 보이기 위함이다.

 

['훙왕'이 雄王이고 웅왕이니까] 즉 그들은 저 멀리 한반도로 떠난 조상 웅녀를 그리워하고 기리며 그 근본을 잊지 않고자 위대한 왕 웅왕의 이야기를 구전해왔던 것이다.

-> 일단 雄과 熊은 다른 한자니까 그 지점에서 이미 헛소리지만, 한국 한자음으로는 음이 같으니 언뜻 현혹될 수도 있겠다.

+ 그런데 방금 확인해 보니 베트남 한자음으로도 둘이 서로 발음이 같다. 성조까지 똑같다.ㅋㅋㅋ... 기가 막힌 우연이다.

그러나 둘이 서로 발음이 같다고 해서 雄王이 원래 熊王이었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고 (최소한 이 글에서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고)

설령 熊王이었던 게 맞다고 치더라도 그게 우리 단군신화의 熊女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고 증명하는 일은 별도의 과제이다.

 

 

이렇듯 언어적, 민족적으로 우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베트남과의 관계에 우리는 조금 더 정성과 마음을 쏟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별 영양가 없는 말이다.

근데 요즘 베트남 시장이 커지고 있고 얼마 전에 대학 동기에게 듣기로는 한국-베트남 교역량이 한국-일본 교역량을 앞질렀다고 했던 것 같다. 현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베트남을 좀 신경써 보는 건 좋은 일일 것 같다.(?)

 

 

[1]Ferlus, Michel (1982). "Spirantisation des obstruantes médiales et formation du système consonantique du vietnamien"

-> 진짜 있는 논문이다. 여기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대략 베트남어와 그 친척 언어들을 보면 베트남어의 어두 마찰음(및 r)이 과거에는 어두자음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맨 오른쪽 타븡어는 대부분 어두자음군을 갖고 있고, 맨 왼쪽 현대 베트남어는 어두에 <g>로 적히는 마찰음을 갖고 있다.

논문의 맨 앞부분이다. 크무어의 'hraaŋ 이빨'과 베트남어의 'răng 이빨'은 서로 어원이 같지만, 크무어 단어의 -r-과 베트남어 단어의 r-은 '상동(homologous)'이 아니라는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2]Scitsiugnil Oduesp (2019). "Approximation of syllable-coda nasals of Proto-Vietic and its implication on Koreano-Vietnamese linguistic relationships"

-> 아까 말했듯이 그냥 내가 전부 다 지어낸 가짜 언어학자, 가짜 논문 제목이다.


언어학적 주장을 직관으로 검증할 수 없다는 건 언어학 개론에서 음운론을 처음 배울 때부터 접하게 되는 사실이다. 한국어 '바보'의 첫 ㅂ과 둘째 ㅂ이 서로 다른 소리라는 걸 직관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요새 읽고 있는 과학철학 관련 자료에서는 '비직관성'이 근대 이후 과학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일단 지구가 둥글며 계속 돌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과학으로서 언어학은 대중이 직관적으로,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진짜 언어학에는 진입장벽이 있다.

 

유사언어학에는 진입장벽이 없다. 누구든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교묘하게 현혹될 수 있는 말들을 하곤 한다.

유사언어학적 주장이 악의적인 사기처럼 누군가에게 실제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포함한 언어학 꿈나무들의 분통을 터뜨리는 일들이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문득 유튜브에서 "XX민족도 우리 민족이었다고?! 전세계 학계가 뒤집히는 증거 발견" 이러면서 국뽕 영상 조회수 장사하시는 분들은 보통 얼마나 벌까가 궁금해진다.

 

뿌슝빠슝

만들다 보니 재미있다. 생활이 못 견딜 만큼 궁해지면 한번 해볼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