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10

‘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의 어색한 정보구조

‘누구누구 님이 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실은 ‘누구누구 님이 스토리를 게시했는데 그 스토리는 곧 만료됩니다.’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언어학방 참괴 님이 ’띵킴 님이 게시한 스토리가 곧 만료됩니다‘로 정리해 주심)(인스타를 잘 사용하지 않는 내가 뭔가를 오해한 게 아니라면,)‘곧 만료되는 스토리를 게시했습니다’라는 문장은 한국인인 나한테 있어서는 정보 포장(information packaging)이 좀 어색한 문장으로 느껴진다.곧이곧대로 그냥 읽으면 인스타그램에 24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만 유효한 새로운 종류의 스토리 기능이 생겨난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원래의 스토리 기능은 24시간 유효하지만 저 누구누구 님이 올린 스토리는 한두 시간 뒤에 만료되는 특이한 스토리라서 ‘곧 만료되는 스토..

언어학 2024.11.25

‘여보’의 지칭어 용법에 관한 소고 - 규범주의를 생각함

‘호칭어’는 ‘아빠, 밥 줘!’에서의 ‘아빠’처럼 남을 직접 부르는 말이고, ‘지칭어’는 ‘이 옷은 아빠가 사 준 거야.’에서의 ‘아빠’처럼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의 친족어(kinship terms,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부르는 말) 중에는 위에 제시한 ‘아빠’의 예문과 같이 호칭어로도 쓰이고 지칭어로도 쓰이는 말들이 있다. ‘엄마’, ‘아빠’, ‘언니’, ‘누나’, ‘형’ 등을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하면 모두 ‘(어떠어떠한 사람)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이르는 말’이라 함은 지칭어로 쓰인다는 뜻이고 ‘부르는 말’이라 함은 호칭어로 쓰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옷은 형이 사 준 거야.’(지칭)도 자연스럽고 ‘형, 밥 줘!’(호칭)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부부간에 사..

언어학 2024.11.16

2년 전 오늘, 나의 언어학 관심사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지 어느새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운영한 지 vs 운영하기 시작한 지?)이 글을 올렸던 게 2년 전이라니 정말이지 잘 믿기지 않는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나 많이 지난 걸까. 구문문법에 대한 신간 도서 소식 (Thomas Hoffmann 인터뷰 영상 리뷰)Martin Hilpert의 유튜브 채널에 무려 오늘(!) 아주 따끈따끈한 영상이 올라왔다. 이번에 새로 Cambridg...blog.naver.com"하여튼 ... 구문문법과 언어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다."여러가지 이유로 요즘은 저런 글을 잘 안 올리지만, 초창기의 조회수 낮은 몇몇 포스팅에서 엿볼 수 있듯이, 원래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저런 이론 이야기도 종종 해 보려고 했었다. 대학에서 나름 진지한 관심..

언어학 2024.06.16

언어학자는 맞춤법을 잘 알까? - 규범문법과 기술문법 (prescriptive grammar vs descriptive grammar)

규범문법: ~하면 안 된다. (prescriptive) 기술문법: 관찰해 보니 ~하더라. (descriptive) (생성문법: 원어민의 머릿속 문장 생성 프로그램을 모사하고자 함) - '문법'이란 어떤 규칙인가? '법'이나 '규칙'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에서는, - '법'이 허용하는 인간 생활 양식의 특정한 범위가 있다. - 그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예를 들면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 - 그러한 금지 규정을 어기는 경우 다양한 차원의 불이익이 따른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여러 처벌을 받거나 적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 이러한 금지 규정은 인간 개인의 본능적인 욕심을 억눌러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다..

언어학 2024.05.25

구독자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

K Klein이라는 언어학 유튜버의 영상을 하나 소개한다. 내가 여기서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잘 풀어 주는 영상이다. 특히 이 글에서 다룬 이야기와 관련이 깊다. ​ 2:03부터 본격적으로 동사의 주어 일치가 왜 (통념과 달리) 쓸모있는지를 다룬다. 잘 시청하면 겸사겸사 영국영어 듣기 연습도 된다. (개인적으로 'the idea is ...'를 'the idear is ...'처럼 발음하는 영국영어 특유의 intrusive r이 재미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B_uGsgXKdk 내용이 다 재미있고 마음에 든다. ​ What People Get Wrong About Language - The Ithkuil Fallacy by K Klein https://blog.n..

언어학 2024.01.19

[언어유형론] 교착어, 굴절어, 고립어(분석어)

'언어유형론'은 언어의 유형에 관한 학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가 사람을 성격에 따라 16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것처럼, 언어도 여러 기준에 의해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 MBTI 검사에서 사람의 성격 유형이 '지아는 INFP, 서아는 ESTP, ...'하는 식으로 나뉘듯이, 언어유형론의 접근을 대략 말하자면 '한국어는 A유형, 영어는 B유형, 중국어는 C유형' 하는 식이 된다. (+ 다만 언어의 유형은 16개 MBTI 유형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한 언어가 어느 유형이다 하고 말하는 것도 마냥 쉽거나 100% 정확한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여러 MBTI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각자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구경하는 일이 재미있듯이, 각 유형에 속하는 언어가 서로 어떤 특징을 ..

언어학 2023.12.16

내용어와 기능어, 실질형태소와 형식형태소 - '대명사'는 어느 쪽?

영어 문법을 배우다 보면 '내용어content word'와 '기능어function word'라는 개념을 접하게 된다. 그 개념은 국어 문법 시간에 배우는 '실질형태소', '형식형태소'의 정의와 아주 흡사하다. 얼마나 비슷하냐면, 영어 위키백과 'Content word' 문서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어휘형태소'이고 'Function word' 문서의 한국어 번역본은 '문법형태소'일 정도다. (다만 내용어와 기능어는 일단 단어word에 대한 분류이므로 접사 등에 대해서 적용할 수는 없다.) 한국어의 '사람', '배', '크-', '작-', '먹-', '자-' 등이 실질형태소이듯이 영어의 'person', 'pear(ㅋㅋ)', 'big', 'small', 'eat', 'sleep' 등은 내용어이고, 한국어의..

언어학 2023.12.12

실질형태소와 형식형태소 - 국어 문법 수업에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기

고등학교에서 언어와 매체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실질형태소(어휘 형태소 lexical morpheme)와 형식형태소(문법 형태소 grammatical morpheme)를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영문법에서 배우는 '내용어content word'와 '기능어function word'도 비슷한데,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실질형태소’는 실질적 의미가 있는 형태소이고, ‘형식형태소’는 실질적 의미가 거의 없고 형식적 의미만 있는 형태소이다. 구체적 의미 내용의 양을 따지자면, 보통 실질형태소 쪽이 형식형태소보다 구체적인 의미 내용을 많이 갖고 있다. 이때 '실질적 의미'라는 것은 문법적 기능이 아니라 바깥의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물이나 그 속성, 또는 언어 바깥의 세계에서 일어..

언어학 2023.12.11

언어 사용자는 종종 기꺼이 귀찮음을 참는다 - 코퍼스로 엿보는 동음이의어와 음운 이웃 회피(feat. '줄은')

1. 줄은? 준? 35쪽 최근에 교보문고에서 광고하던 일본의 미스테리 소설 을 사서 읽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괜찮다. 신경 쓸 일이 하나 줄은 건 좋은 것 아닌가. '줄은'에 주목해 보자. ​ 표준어 기준 ‘줄다’의 관형사형은 현재시제에서 ‘주는’, 과거시제에서 ‘준’이다. 규범에 따르면 어간 말음이 /ㄹ/인 용언들은 /ㄴ/, /ㅂ/, /ㅅ/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예외 없이 /ㄹ/이 탈락하는 활용을 하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트위터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twitter.com/urimal365/status/222599850062127104 트위터에서 즐기는 국립국어원 “‘확연히 준 것’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줄다’처럼 ‘ㄹ’ 받침인 동사 어간에 관형사형 어미 ‘-ㄴ..

언어학 2023.07.09

한국어 성조? 지금 이 순간의 언어변화 - Praat으로 음높이 조절하여 예사소리를 거센소리로 만들기

평음(예사소리)과 격음(거센소리)을 구분하는 척도를 보통 기식(숨의 양)이라고 설명하는데요, ​ 최근 젊은 세대의 수도권 말에서는 예사소리와 거센소리 사이에 기식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마치 성조처럼 음높이의 차이로 거센소리와 예사소리를 구분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 거센소리는 높은 음, 예사소리는 낮은 음, 이렇게 말이죠. ​ 1935년에 어느 41살 아저씨하고 11살 남자아이의 말을 녹음한 자료가 있었는데요, ​ 그때도 이미 41살 아저씨의 말에는 예사소리와 거센소리 간 음높이 차이가 별로 없는 반면 11살 아이에게서는 음높이 차이가 조금 보였는데, ​ 이 음높이 현상에 주목한 연구진이 2005년에 81살이 된 동일인물의 녹음 자료를 분석해 보니,[1] 70년 전보다도 더 음높이 차이를 보..

언어학 2023.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