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언어학의 매력을 전도하는 법 (+ 근황)

cha5ylkhan 2022. 12. 31. 20:57

1. 토익은 975가 나왔다. 시험 봤던 당일에는 LC를 잘 못 본 것 같았고 RC는 완벽하게 푼 거 같았는데 막상 결과는 약간 반대로 나왔다. LC 단문-단답 유형이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좀 어렵게 나와서 당황했는데 다행히 꽤 맞혔거나 남들도 많이 틀렸거나 했나 보다.

 

2. 오늘 '한국 언어학 올림피아드' 접수가 마감된다고 한다. 언어학도 언어학 올림피아드도 아주 재미있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안타까워서, 지난 1개월간 기회가 닿는 대로 몇몇 사람에게 언어학 올림피아드를 홍보하고 언어학이 매력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직간접적으로 들은 피드백에 의하면 이제 적어도 몇 명은 언어학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과 그게 꽤 재미있는 공부라는 걸 기억하게 된 것 같다.

당연히 아무런 대가가 있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근 몇 년 간 했던 일 중에 가장 의미있고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도 언올 접수 시즌이 되면 언올 홍보 겸 언어학 매력 전파 활동을 기회가 되는 대로 해 보면 좋겠다.

 

2.1. 이번에 언어학의 매력을 전도한 레파토리는 이렇다. 적어도 몇 명에게는 꽤 통했다.

 

- 언어학: 언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표준국어대사전, 한위백, 나무위키, 영위백, 서울대 언어학과 소개글 인용)

+ 평소 국어나 영어 (중 특히 문학) 문제를 풀면서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았거나 '코걸코 귀걸귀' 같은 느낌을 받았던 사람은 언어학의 매력에서 탈출구를 찾기도 한다.

 

- 언어학의 매력: 언어의 통일성과 다양성 (The Unity and Diversity of Language; Whaley가 쓴 언어유형론 개론서의 부제이기도 하다)

+ 크게 발음, 단어, 문법이라는 세 영역에 대해서 각각 통일성과 다양성을 논할 수 있다.

+ 발음의 통일성과 단어, 문법의 다양성을 말하려면 언어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은 발음의 다양성, 단어와 문법의 통일성에 대해 말하겠다.

 

 

- 단어의 통일성

 

+ 복잡한 개념은 복잡하게, 단순한 개념은 단순하게 표현하는 경향성.

* vulgarlang.com에서 클릭 하나로 만들어낸 새로운 인공어 Spuki어에 있는 두 단어 'Lu'와 'mewawng'는 각각 '나', '수업~교실~강의'라는 뜻이다. 두 단어와 두 의미를 순서 없이 제시하고 연결지어 보라고 하면 복잡성과 단순성에 대한 직관으로 정답을 맞힐 수 있다.

 

+ 어원이 같은 단어끼리는 서로 비슷하다 (나 자신도 여기에서 언어학에 발을 들였다)

이 영상이 흥미를 끄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저게 일본어라구요?'라는 반응)

https://www.youtube.com/shorts/N2dJLo6FdxU

위 영상을 보여주고 내가 만든 초간단 유사언올 문제를 제시했다. (몰랐는데 일본 언어학 올림피아드 기출문제 중에 한국어-일본어 한자어의 음소 대응 관계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퀴즈를 해설하고, 역사적인 설명을 간략하게 덧붙였다.

이러한 대응이 역사적인 변화에 의해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을 알려준 김에

언어라는 것이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뭔가 있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언어학의 멋짐을 발산하기 위해

Praat을 가지고 예사소리와 거센소리의 음높이 관찰을 직접 시연했다.

달탈 발팔 갈칼? 이었나 순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이 현상에 대해 1930년대와 2000년대에 동일한 사람의 발음을 녹음해서 관찰한 연구가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를 끌었다.

 

 

- 발음의 다양성

+ 신기함을 이끌어내는 데는 역시 흡착음(click)이 적격이다. 나미비아의 위치를 알려 주고서 아래의 코에코에어 강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https://youtu.be/Nz44WiTVJww?t=96 

 

* 같이 따라해 보는 게 또 맛이다. '써먹어 봐야징' 하는 반응이 있는 것도 괜히 뿌듯했다. (어디에 써먹는다는 거지 ㅋㅋ)

 

+ 수어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수어에도 음성언어와 똑같은 '발음'의 원리(음운론)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모 언어학자가 밝혀냈다고 알려주었다. (이건 통일성이지만 이미 수어 자체가 다양성이니까 다양성 맥락에 넣었다. 통일성을 이야기하려면 음운론 강의가 되니까 그건 넘겼다.)

* 아래 글과 '고마워' 글을 보면서 하나하나 동작을 제시해 주었다. 이것도 따라해 보는 게 맛이다. 수어에도 음성언어처럼 지역어가 있다는 사실도 흥미를 끈다.

 

https://cha5ylkhan.tistory.com/3

 

수화는 만국공통어일까요? (1) - '엄마', '아빠'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화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통념과 달리 수화(수어, sign language)는 만국공통어가 아닙니다. 나라마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서로 같은 음성언어를

cha5ylkhan.tistory.com

  듣는이에 따라서는 방탄소년단 Permission to dance 영상이나 아이유가 '나의 아저씨'에서 했던 수어 영상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 문법의 통일성

+ (특정한 형태론적 유형에 속하는 언어들 한정이지만) 몇몇 언어에서 일관적으로 '어간'과 '어미'가 관찰되고, 그 기능과 특징이 비슷하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 그런데 그런 언어들이라 해도 항상 어간-어미가 투명하게 분절되는 것은 아니다. 'eat - ate, person - people' (+ '알다 - 모르다'는 활용 관계는 아니지만 대강 넣었다)

+ 그런 '예외'를 싫어하고 외국어 학습에 '예외'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갈등과 전쟁에 시달린다고 믿은 사람이 있었다.

+ 언어학을 배우면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예외를 없애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한 언어' 에스페란토를 소개하고, 아래 문제를 풀려 보았다. 간단한 해설을 덧붙였다. 대상에 따라 포상도 곁들였다.

 

 

- 언어학, 진로?

+ 약간 양심에 찔리지만 일단 언어학을 배우면 시리나 클로바나 카카오 인공지능 스피커 같은 걸 만드는 NLP 분야에 종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다만 언어학을 배울 때 필요한 사고 능력이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도 도움이 되고 반대도 그렇다는 점은 진심으로 믿는다.

+ 소수민족 언어, 수어, 잠재적으로는 외계인 언어까지 채록하고 분석하여 사전과 문법서를 만드는 현장언어학의 매력도 소개해 보고자 했다. (무려 언어학자가 주인공인 영화 '콘택트(Arrival)' 소개를 덧붙였다.)

https://youtu.be/DDG3di5P_58?t=370 

+ 한국 언어학 올림피아드 기출문제 중 불규칙 활용의 유형, 중세 국어의 설명의문문과 판정의문문 등 국어 교과와 관련 있는 문제들을 골라서 짧게 소개하였다.

(대상이 학생인 경우에) 내가 만든 문제들을 풀어 보면서 재미도 느끼고 자신감도 느꼈다면 '한국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언젠가 도전해 보기를 권했다.

내가 만든 문제는 실제 언올에 비하면 난이도도 복잡성도 정교함도 매우 떨어지니까 혹시나 누군가가 너무 쉽게 결정하고 실전에서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했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3. 연말은 더럽게 바쁘다. 그래서 정신건강이 좀 안 좋아졌었는데, 새해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혼자서 조용히 쉬니까 나아졌다. 조용히 쉬는 게 최고다.

 

0. 요즘 글이 너무 없어서 블로그 일일 조회수가 계속 떨어져 가는 걸 막으려고 썼다. 언어학 매력 전도법은 조회수에 도움이 안 될 거 같아서 토익 얘기를 굳이 끼워넣었다.